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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 기념관」 인천에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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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86세의 이당 김은호 화백이 고향인 인천에 자신의 기념관을 마련하기 위해 그가 50여년간 살아온 서울 와룡동의 이묵헌을 처분했다. 주변에선 화업 반세기의 산실인 그 한옥 자체가 조촐한 기념적 건물이 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지만, 역시 부득이한 사정이라고.
첫째 이묵헌의 일부가 주택지 소방도로로 헐리게 되고 또 고향에 돌아가는 게 노화백의 오랫동안의 소망이었다.
인천 문학산 밑 옛집은 이제 흔적조차 없기 때문에 새로 마련한 집은 자유공원 중턱에 자리잡은 개화기의 양옥. 송학동 3가 5의 대지 2백40평에 96평의 단층벽돌집인데 독일인이 처음 건축하여 외국인들이 살다가 장면씨도 소년시절을 보낸바 있어 인천에선 손꼽히는 양옥이다.
천장이 높고 시원한 구조여서 미술관으로 꾸미기도 좋고 더구나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위치이므로 인천의 새 명소로 가꿀 계획. 내년 봄쯤 이사하면 우선은 기거하면서 후진을 양성하고 구작을 모아 이당 기념관으로서 시민에게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외아들마저 미국에 장기 체류하며 유학중이어서 노화백은 고향으로 돌아가 무엇인가 기여하고 싶은 생각인 것 같다.
□…동양화가 향당 백윤문 화백(72)이 36년만에 재기, 9월 1∼5일 신문회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일제하의 선전에서 최고의 총독상과 창덕궁상 등 화려한 화력을 가진 백씨는 장기간 수원에서 은거하며 투병생활을 해오다 2, 3년 사이 뜻밖에 회복돼 다시 붓을 들었다. 지난 연말 후소회전 (이당문하)에 『노안도』를 첫선 보이더니 이번엔 30여점을 모아 개인전까지 열게 된 것이다.
작품은 젊어서의 필력을 되찾을 수 없지만 서울에서 백송화랑(서울낙원동)을 경영하는 둘째아들이 회복의 기쁨과 정성으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출품은 담채의 산수 화조 상모 등 소폭들이다.
향당은 1930년대에 이당문하의 첫째 화가로 지목됐었고 한국인의 생활을 소재로 하는 인물묘사에 뛰어났었다. 그러나 42년의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정신질환이 생겨 실어증과 함께 몸져 누워버려 근년까지 역사 속에 망각된 화가가 되어 왔다.

<동양화 권영우화백 9월말 다시 파리에>
□…동양화가 가운데 맨 먼저 모필을 던져버리고도 창호지 화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권영우씨(52)가 7월초 귀국했다가 9월말 다시 「파리」로 돌아간다.
「파리」화단에 좀더 오래 머무르기 위해 잠시 돌아온 권씨는 이번에 중앙대교수직을 아예 사직하는 둥 잡무를 정리하고 앞으로는 작가다운 제작생활에만 전념하겠다고.
귀국한 후에도 화단과는 거의 접촉하지 않고 내년초 「파리」예술제의 출품작 제작에만 골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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