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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랑 위해 처절한 맨몸혈투 … 할리우드 대작보다 찡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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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달 칸영화제는 한국 영화에 조금은 이례적이었다. 이전까지 칸에 초청된 한국 영화는 대부분 드라마 중심이었고, 호평받는 지점도 이야기 구조의 실험성이나 스타일 혹은 테마의 독특함 등이었다. 하지만 올해 칸의 관객들은 ‘한국적 액션’에 박수를 보냈고 ‘표적’과 ‘끝까지 간다’의 상영관은 강한 아드레날린의 분출구였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토대로 점점 스케일을 불려가는 할리우드 액션이나 기본적으로 무술을 바탕으로 하는 중화권 액션이 주지 못하는 강렬한 그 무엇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 액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회고하자면 무척이나 거친 시절이 있었다. 장동휘나 박노식 같은 큰형님들이 계시고, 김효천 같은 액션 거장이 건재하며, 이두용 감독의 발차기 액션이 붕붕 날고 그 어떤 가치보다 ‘의리’가 중요하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명동 거리를 주름잡았고, 만주 벌판을 달렸다. “넌 모른다. 독버섯처럼 태어나 천대와 냉대 속에 괴로웠던 사나이 세계를. 그 씻기 어려운 아픔을” 같은 대사를 일상적으로 구사하는 ‘싸나이’들의 세계. 반세기 전만 해도 한국 영화의 한쪽을 채우는 건 그들의 으리으리한 카리스마였다.

 그러나 전성기를 지난 액션은 점점 하향곡선을 그렸고, 1980년대엔 거의 빈사상태에 빠졌다. 반등이 일어난 건 90년대였다. 중심 인물은 화려한 시절을 몸소 겪었던 임권택 감독이었다.

위부터 영화 ‘표적’에서 동생을 구하려 분투하는 전직 특수부대원역의 류승룡, ‘끝까지 간다’에서 위기에 몰린 형사로 열연한 이선균, ‘용의자’에서 죽은 아내의 복수를 노리는 탈북자로 분한 공유, ‘아저씨’에서 납치 된 꼬마를 구하려는 전직 특수요원 역의 원빈, ‘장군의 아들’에서 일제시대 주먹왕 김두한 역을 한 박상민. [사진 각 영화 홈페이지]

그는 ‘장군의 아들’(1990)로 전통을 부활시키면서 새로운 화두를 제시했다. ‘박진감’이었다. 이 영화가 좁은 공간에서 보여주는 역동적 스펙터클은 ‘다찌마와리’라는 은어로 비하되던 우리의 액션 유산이 얼마나 우아하고 힘 있는 몸사위인지를 증명했다. 단언컨대 이후 한국의 모든 액션 영화는 ‘장군의 아들’이 터놓은 길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때론 ‘막싸움’처럼 보일지언정 진짜로 싸우는 것 같은, 총이나 칼 같은 무기는 절제하고 최대한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엄격한 동선이나 합보다는 싸우는 자들의 숨소리와 땀방울을 우선시하는 액션. 한국의 액션 영화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면 이처럼 ‘실감 나는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아우라일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키워드를 더하면 이른바 ‘한국적 액션’의 얼개가 만들어진다. 바로 ‘감정’이다. 우리의 액션만 감정을 내세운다는 건 아니지만, 그 농도에서 차이가 있다. 앞에서 말한 박진감이라는 것도 이러한 강한 감정의 결과다. ‘아저씨’(2010)의 태식(원빈)에겐 한 소녀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신세계’(2013)는 의리와 배신 사이의 강한 고뇌를 보여준다. ‘표적’의 여훈(류승룡)은 누명을 벗어야 하고, 태준(이진욱)은 아내를 구해야 한다. ‘내가 살인범이다’(2012)의 유족들은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범인을 잡아야 한다. ‘악마를 보았다’(2010)의 수현(이병헌)은 약혼자를 죽인 연쇄살인마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처단한다. ‘황해’(2010)의 구남(하정우)은 어떻게든 돌아가야 한다. 물론 ‘테이큰’이나 ‘본’ 시리즈 같은 외국의 액션 프랜차이즈에서도 이런 측면이 강조되지만 한국만큼 가족, 조직과 생존 등의 테마에 액션이 이처럼 강하게 결합된 나라는 흔치 않다. 우리에게 액션은 시각적 쾌락 이전에 처절한 감정이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특수성을 더해야 ‘한국적 액션’이 완성된다. 그것은 분단 상황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가 만들어내는 고통스러운 사연과 긴장감은 우리의 액션을 좀 더 찡한 그 무엇으로 만든다. ‘의형제’(2010), ‘베를린’(2013),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동창생’(2013), ‘용의자’(2013) 등이 보여주는 극한의 액션들이 현실성을 지닐 수 있는 건 그런 이유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총부리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던 ‘쉬리’(1999)부터 내려오는 흐름이기도 하다.

 우린 ‘한국적 액션’에서 사회의 모순에 울분을 터뜨리고, ‘쉬리’ 같은 영화에선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고통받는 자들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리얼한 격투 신은 살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마냥 즐겁게 즐길 수는 없는 스펙터클. 우리에게 액션은 어쩌면 가장 비극적인 장르일지도 모르겠다.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한국 액션 캐릭터 베스트 5

● 김두한(장군의 아들)

드라마와 영화에서 여러 배우가 맡았지만 최고는 ‘장군의 아들’의 박상민이다. 오로지 두 주먹으로 식민지 조선의 거리를 휘어잡는다. 1970년대엔 이대근의 김두한이 있었다.

● 민(스트리트 파이터)

김성수 감독의 ‘비트’(1997)에서 정우성이 보여준 그 ‘간지’는 그 누구도 범하지 못할 경지. 어느덧 40대가 된 지금도 정우성은 최고의 액션 배우다.

● 강철중(복서 출신 특채 경찰)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2002)과 ‘강철중’(2008)의 강철중은 기교보다는 저돌성으로 돌파하는 오뚝이 같은 액션 히어로. ‘공공의 적 2’(2005)에선 검사로 등장하는데 꽤 어색하다.

● 차태식(전직 특수부대 요원)

‘아저씨’의 원빈은 최근 액션 영화 캐릭터에서 갑 중의 갑이다. 일 대 다 액션에서 보여주는 액션은 빈틈 없는 잔인함이다. 스타일리시한 액션의 아이콘.

● 김수현(국정원 요원)

‘악마를 보았다’를 꼽긴 했지만 ‘달콤한 인생’(2005)·‘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등에서 이병헌은 냉혹한 액션 캐릭터의 일가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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