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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잠적 단정엔 의문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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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물리학자 김희규 교수 실종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1일 서울 청량리 경찰서에 수사본부(본부장 윤재호 수사과장), 서울시경에 수사 전담반(반장 김상명 경감)을 설치, 본격적인 소재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지금까지 수사결과 김씨가 자살했을 가능성·잠적·또 다른 이유에 의해 실종됐을 가능성 등 세 갈래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김 교수의 사진과 인적사항이 든 수배전단 2만장을 인쇄해 전국 관광「호텔」등 접객업소와 유원지·사찰 등에 배포키로 했다.
물리학자 김희규 박사는 죽었는가 살아있는가? 실종 9일째가 되도록 그의 행방은 묘연하다.
경찰은 처음 김 박사가 문교부에 제출해야 할 연구 논문이 매듭 지어지지 않아 고민했다는 부인한 원주씨(형)등 가족들의 진술과 실종되기 바로 전 청산가리 등 독극물을 사갔다는 점에서 자살이 아닌가 보고 수사를 벌였다.
물리학계의 권위자이면서 기간 내 연구논문을 제출치 못함으로 인한 학계에서의 권위실추와 학자적인 자존심 때문에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우며 고민(부인의 말)하다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 경우 자살했거나 스스로 잠적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평생을 학자로 지내온 김 박사가, 더구나 60을 바라보는 유복한 가장으로서 과연 연구 논문 하나 때문에 자살하거나 잠적할 정도로 비이성적이었는가 하는 점과 김 박사가 그토록 고민했다는 논문이 사실은 지난달 23일 거의 완성됐으며 김 박사가 맡기로 한 이론 부문도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공동연구자 홍치유 교수의 말)는 사실 등은 자살의 가능성을 배제하면서 많은 의문을 던져 주고 있다. 또 실종 전후의 행동에도 의문이 많아 의혹을 더해주고 있다.
첫째 김 박사는 실종 당일인 24일 정오에 한국물리학회 부의장인 조병하 박사(한국과학원교수)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어긴 채 행방불명됐다는 점이다.
조 박사에 따르면 김 박사는 실종 전날인 23일 하오 8시 조 박사 집에 찾아가 뭔가에 쫓기는 듯한 초조한 표정으로 논문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조 박사가『뭐 그까짓 논문 하나 가지고 고민을 하느냐. 논문 제출기일을 연기 하든가 정 어려우면 연구비를 돌려주면 될텐데』라고 말하자 김 박사는 연구비를 돌려 줄 경우 신상에 미치는 영향을 묻고 제출기일 연기문제를 문교부에 대신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두 사람은 다음날인 24일(실종일)정오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조 박사는 문교부에 논문제출 연기 등 필요한 조치를 했으나 김 박사는 만나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 조 박사와 김 박사의 다른 가까운 한 친구인 김형함 교수(동국대)는 김 박사가 지난 수년동안 3∼4차례 논문을 맡았었기 때문에 연기절차 같은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어 그에 따른 고민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둘째는 평소 학자로서의 자존심과 긍지가 남달리 강한 그가 부인이나 친지들에게 연구논문에 대한 고민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점이다. 학자들은 자기연구분야의 중간 결과나 내용을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해도 털어놓지 않는 것이 상례로 이 경우 최악의 상태에서 절망감을 불러 일으켰다고는 볼 수 있지만, 자의든 타의든 뭔가 다른 고민을 숨기는 은폐 수단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세째는 평소 사용하는 자가용을 이날만은 사용하길 꺼린 점이다.
김 박사는 24일 상오 7시40분 부인 한씨가 장녀(24)와 함께 자가용을 타고 가라는 제의를 이유 없이 거절,「택시」로 출근했다.
비서실의 전화연락으로 총장과 만나기로 한 시간은 상오 8시30분으로 자가용 운전사가 출근하는 8시에 출발해도 결코 늦지 않았다는 것.
또 상오9시에 돌아오겠다는 말에 부인 한씨가 시간에 맞춰 학교로 차를 보내겠다고 했는데도 김 박사는 9시10분쯤 학교를 나서「택시」로 종로3가 화공 약품상에 도착했으며 이곳에서 학교수위실에 연락, 차를 종로3가 지하철역 부근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한 후 이를 이용치 않았었다.
네째는 김 박사가 사간 염화「암모늄」과 청산가리가 연구실험에 필요한 재료이나 평소와는 달리 조교를 시키지 않고 김 교수가 이를 직접 구입해간 점이다.
또 학교에 전화를 걸어 운전사를 부르는 등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이 극약을 사간 점을 노출시킨 점에 의문이 있다.
다섯째 지난달 5일부터 12일까지 일본 동경에서 열린「박막(엷은 필름)국제학회」에 참석한 기간에 전공과 거리가 먼 태양「에너지」에 관한「세미나」에 참석한다며 5일 동안이나 대만에 체류, 17일에야 귀국했다는 점이다.
김 박사는 학술대회 참석차 연2회 정도 일본 등 해외여행이 잦았다. 대만에서의 행적 또한 현재로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대만은 일본에서 조총련 세력이 가장 센 지역이다.
여섯째 김 교수는 경북 상주가 고향이나 관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황해도 해주 중학을 나와 경도대 의대에 입학, 해방을 맞아 중퇴했다. 이때 부모는 월남하지 못해 아직도 북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곱째 김 박사가 실종된 당일 하오 8시 부인 한씨가 경찰에 가출인 신고를 했고 실종 전 2∼3일 동안 고민 속에 두문불출했다는 한씨의 진술이 그 동안 김 박사를 만났다는 친구들의 진술(조·홍 교수)과 엇갈리고 있는 점도 의문점이다.
이 같은 김 박사의 실종 전 행동과 배경으로 볼 때 김 박사는 자살이나 자의로 잠적했을 가능성에는 많은 의문점이 있다.
김 박사가 국내물리학계의 권위(특히 반도체와 고체물리학)로 세계적 수준인 국내 물리학계를 이끌어 가고있는 점, 최근 원자로 도입계획에도 참여한 점 등은 자살이나 잠적가능성 보다는 다른 이유에 의한 실종의 의문을 더해 주고 있다. 이 경우 그가 학교에 들러 가지고 간「노란 봉투 속의 내용물」이 무엇인가도 의문으로 남는다.【박준형·엄주혁·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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