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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통신] '아슬아슬한' 비서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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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대중(DJ) 대통령 초기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문희상 청와대비서실장은 최근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당시 '국민과의 대화'를 마친 뒤 DJ에게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언급할 필요가 있느냐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당신들이 그런 걸 잘 안하니까 내가 하는 것 아니냐'며 DJ가 정색을 하더라"고 했다. 취임 3개월 뒤 그는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이례적 좌천인사'로 받아들여졌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청와대 참모 중 누가 쓴소리를 많이 하느냐고 두루 물어봤다. 유인태 정무.문재인 민정.박주현 국민참여.이해성 홍보수석과 정찬용 인사보좌관이 꼽혔다. 의외로 육군중장 출신 김희상 국방보좌관이라는 답도 적지 않았다.

文민정수석은 최근 "대통령 측근 가운데서 좋지 않은 정보가 있어 확인 중"이라고 브리핑한 적이 있다. 관련 보도가 잇따르자 내부에서 "성급한 발표가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文수석은 이에 "예방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경고"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朴국민참여수석은 뜨거운 감자였던 특검법 논의 과정에서 "국익을 위해 반드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朴수석과 鄭인사보좌관은 정권교체 후 민감한 문제로 부상한 '호남의 정서'에 대해서도 盧대통령의 사려깊은 대응을 촉구하고 있는 '유이(唯二)'의 참모라고 한다. 朴수석에겐 "매번 그렇게 세게 나가도 되는 거냐"는 주변의 걱정이 나올 지경이라고 한다.

KBS 사장 사표 수리 여부로 논란이 있던 지난 4일 오전. 盧대통령이 부처 업무보고를 받다가 나와 李홍보수석을 불렀다. 盧대통령은 '사표 수리 후 현 이사회의 새 사장 제청'의 결과와는 다른 의견을 개진했다고 한다.

文민정.朴국민참여 수석이 李수석과 함께 대통령의 입장표명을 만류하며 끈질긴 설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은 참모 3인의 건의대로 사표가 수리됐다.

재야.학생운동 출신이 많은 청와대 참모진의 면면으로 미뤄 의견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을까 하는 세간의 우려도 있다. 金국방보좌관은 제주 4.3사건 평가를 놓고 군경의 입장을 대변하는 등 청와대 내에서 '보수적 목소리'를 가미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4일 오후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비서동을 처음 개방하는 행사가 있었다. 기자들과 소주잔을 나누던 柳정무수석은 盧대통령이 입장하자 "긴장하면서 잘 먹고 있다"고 조크를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대통령이 묻자 柳수석은 "기자들과는 긴장관계를 유지하라고 해서…"라고 답했다. 청와대 내의 '자유인'으로 통하는 柳수석은 각종 회의에서도 말에 머뭇거림이 없다.

행사 후 기자들이 돌아간 뒤 柳수석과 鄭인사보좌관이 잔디밭에 남아 소주잔을 교환했다. 柳수석이 鄭보좌관에게 "당신은 아슬아슬해서 말이야"라고 농을 건네자 鄭보좌관이 "내가 보기엔 당신이 그렇다"고 했다고 한다.

대통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진언하는 '아슬아슬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청와대 내부는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 혹여 그것이 대통령이 듣기엔 '허튼 소리'라 하더라도 말이다.

최훈 청와대출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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