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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구는 「타이거·마우스」로, 장문은 「트랩」이라고 번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뉴욕」에서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와 이곳 바둑회 김호중 회장과 김경삼 3단의 안내로 부산고교출신의 김화규 초단 댁 만찬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33세란 젊은 나이에 「필라델피아」 바둑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호중 4단은 『갑자기 고향 생각이 날 때는 무턱대고 떠나고 싶은 충격에 사로잡힙니다만 이럴 때 바둑으로 향수를 달래며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곤 합니다』고 술희했다.
한양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이곳에서 설계사로 활약하고 있는 김 회장은 처음에는 바둑을 두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으나 누가 바둑상대가 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몰라 답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궁리 끝에 교회의 게시판에 『바둑 두고 싶은 분은 다음 번호로 연락해 주십시오. 바둑광 김.』 이렇게 기록해 두었더니 며칠이 안 돼 희소식이 오더라고. 어찌나 기쁜지 당장 만나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우선 바둑부터 시작했노라고 했다.
처음엔 자기 집이 기원구실을 했으며 나중에는 상대자의 집을 돌아가며 두는 동안에 소문이 퍼져 이제는 66명이란 회원을 확보하게 되어 의젓한 바둑회를 조직하게 되었다고 흐뭇해 했다.
필자가 이곳에서 며칠 묵으면서 회원의 대부분과 만났는데 31세에서 42세 사이의 청년층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으며 유단자도 하대홍 5단과 4단인 김 회장을 비롯하여 유단자도 10여명이 있었으며 『바둑 잘 두는 청년은 모두 미국에 이민 왔다』 할 정도로 실력 면에서도 뛰어난 분들이 많았음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록 강자들이 많고 또 회원일동의 단결이 잘 되어 있음인지 이곳에 한국기원 지부설치를 요청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원 건물이 없지만 8·15를 기념하여 개관하는 한인회관 건물 안에 기원 전용실을 마련해주겠다는 한인회장 박상익씨의 다짐을 받고 필자는 직접 이 회관을 돌아보기도 했는데 한국기원 크기 만한 커다란 건물이었다.
교포들의 이 같은 바둑 열에도 이를 받아줄 한국인 운영의 기원은 전 미국에 5개정도 밖에 없었다. 회비가 기료로 운영되는데 기료는 하루 1「달러」. 일본인의 기원들이 법인체로 등록돼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아직 규모가 작아 법인등록을 못하고 기부금에도 면세혜택이 없기 때문에 교포들의 지원금이 거의 없다. 이곳에선 일과가 끝나야만 문을 열지만 새벽 2시가 넘어야 겨우 흩어졌다.
미국인 중에는 아예 「셔츠」에다 바둑판과 『기』란 글자를 「프린트」해서입고 다니는 사람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그들이「호구」를 「Tiger Mouth」라 부르는걸 듣고 귀가 번쩍 띄었다. 호구는 일본에도 없는 우리 바둑의 용어이기 때문이다. 한국 바둑이 이곳에 내리는 가느다란 뿌리를 보는 것 같았다. 장문은 「Trap」, 축을 「Labber」라고 할 때와는 다른 감동을 받았다. 장문, 축은 일본에서도 쓰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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