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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전남 담양>「플래스틱」홍수 견뎌낸 「죽세공 3백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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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일마다 「장」열려>
담양 죽물장수를 만나면 산에서 내려오는 호랑이도 겁나 도망간다는 옛말이 되살아난다. 이른 아침 담양 장으로 향하는 장꾼들은 자기 몸 서너 배나 되는 부피의 대바구니·소쿠리 짐을 역사처럼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몇 십리 길을 지나다닌다.
3백년 동안 죽물의 본고장으로 이어온 담양 장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만 지게와 소달구지 행렬 속에 동력 경운기가 가끔 낀 것이 눈에 띈다. 짐간을 달고 산더미처럼 죽세 공예품들을 실은 경운기가 한번 지나가면 자동차길이 꽉 차 버린다.
전남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영산강 상류 백진강변에는 5일장으로 죽물시장이 열려 일대 장관을 이룬다. 군내 각 마을은 물론 인근 군에서 농가부업으로 만든 죽세공예품들이 모두 담양장에 모이고 이를 사들이는 도시의 상인들로 담양 죽물시장은 5일마다 한번씩 북적댄다.

<완구·단추까지>
장에 나온 물건들은 가정에서 많이 쓰이는 대바구니와 광주리가 대부분. 키·조리·삿갓·베개·쟁반·과실기·부채·초롱·대발(죽렴)·바둑판·장기판·죽부인 등 옛것에서부터 각종 완구·「핸드백」·「브로치」·단추·의자·「테이블」·침대 등 가구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다.

<47년 미 박람회에>
섬세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는 각종 죽세공예품들이 천변 시장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또 팔려간다. 5일장 하루에 거래되는 내수용 죽세공품은 3만여점에 2천여만원어치.
연간 3백 50만점이 만들어져 국내외에 23억원어치가 공급된다. 47년 미국 국제박람회에 첫 출품한 후 60년대부터 수출을 시작, 76년에는 1백 55만「달러」의 수출고를 올렸고 77년에는 88만「달러」로 떨어졌으나 올해는 1백 32만「달러」 목표.
온 식구가 5일 동안 만들어낸 광주리 68개를 이고 장에 나온 이월금씨 (48·여·담양군 월산면)는 『지난 장날엔 서울에서 중간상인들이 많이 몰려 광주리 하나에 1천 5백원까지 받았는데 이번 장에는 사려는 사람이 적어 겨우 1천원씩 받았다』면서 이젠 대나무 값이 비싸 더 만들기도 어려워졌다고 원망스러운 듯 말했다.
광주에서 22km. 자동차로 20분 남짓 걸리는 담양은 야산들이 온통 대밭으로 덮여있다. 중부지방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대나무가 전남 지방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우거진 숲이 눈에 들어오고 담양에 들어서면 모두가 대밭같이 보인다. 그래서 담양군 산림과장은 죽림과장이라고 불릴 정도.

<한해 3백 50만점>
담양의 대밭은 1천 4백 61ha. 전국대밭의 19·2%, 전남 대밭의 33·8%를 차지하고 있다. 또 대의 품질이 좋고 단위생산량이 높아 연간 생산량은 전국의 38·2%를 차지하는 9만 7천 속(1속은 새끼 줄 둘레 30cm가량의 1묶음).
현재 담양에서 죽세공에 손을 대는 사람은 전체 인구 10만 5천명의 5·1%인 5천 2백 85명이며 가구로는 11·1%인 2천 78가구. 농가 중에서도 전업농가는 2백 4가구뿐이며 나머지1천 8백 74가구는 모두 부업으로 만들어 연간 67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1백 5개 마을의 각 농가들은 마을별로 한가지 종류만 전문으로 만들고 있다. 광주리는 담양읍 백동리에서, 대발은 무정면 동강리 구암 1구와 창평면·고서면·봉산면에서, 죽부인은 수북면, 채반은 월산면, 의자 등은 담양읍 객사리, 죽피제품은 금성면 석현리에서 주로 만든다.
한마을 79가구 중에서 53가구가 죽세공에 종사하구 있는 무정면 동산 1구 칠전 마을의 새마을 지도자 박대봉 씨(39)는 마을 주민 중에서 대나무가 없어 손을 놀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무엇보다 원죽을 공동 구입할 수 있는 길을 터 달라고 호소한다.

<「자연의 멋」에 숨통>
담양의 죽세공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난도 많이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공습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핑계로 일인들이 대나무를 베지 못하게 해 한동안 죽물이 대를 잇지 못했다.
60년대에 「플래스틱」 만능시대가 닥치자 죽제품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값싸고 견고하고 실용적인 「플래스틱」의 물결은 죽세공예 농가에 아직도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최근에는 자연적인 것에서 멋을 찾으려는 경향이 늘어 죽세 공예의 전망은 밝다.

<글> 황영철 기자

<사진> 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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