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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하버드」대와 충암 학원의 바둑결연 행사가 끝나고「보스턴」을 떠나면서 이홍식 이사장은 개인사정으로 급히 귀국했다.
첫 나들이에 마치 망망대해에 혼자가 된 것 같은 공포감마저 들었는데 행선지인「필라델피아」공항에는 이곳 바둑협회장 김호중4단과 김화규 초단이 영접을 나와주어 혼자가 된 기분이 조금은 가셨다.
거기다「로스앤젤레스」에 머무르고 있던 김수영5단이『이곳「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와달라』는 전화를 걸어와『이제는 혼자가 아니구나』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김5단은 필자보다 조금 뒤에 건너와 이곳 중앙일보지사가 올해 처음으로 마련한 미주「왕위전」을 준비하면서 UCLA(「캘리포니아」대)와 USC(남가주대)바둑「클럽」회원들에게 지도 국을 베풀고 있었다.「로스앤젤레스」에 와서들은 이야기이지만 김5단은 그곳 교포들이나 미국인들과의 지도대국에서 거리를「유머러스」하게 해설해서 대단한 인기였다.
바둑의 흑백대결을 노란색 바둑판이 조화하고있는 것처럼 미국의 흑백문제를 동양인이 해결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어떻든 필자는 안정을 되찾은 마음으로「뉴욕」을 들렀다. 「뉴욕」에서는 이 고장「왕위」로 통하는 권령국6단과 김명건2단, 이영윤 초단, 그리고 미국바둑협회 임원들의 안내를 받았다. 낮에는 관광을 하고 밤에는 이곳 미국바둑협회에서 지도대국을 했다.
이들 중에는 교포 3명, 중국과 일본인이 각1명, 미국인 9명 도합14명을 상대로 동시 대국했는데 밤 7시에 시작하여 새벽 1시까지 약6시간이나 소비되는 바람에 저녁식사가 새벽 참으로 하는 격이 되기도 했다.
대국은 2열로 7명씩 좌우로 잘라놓고 대국자가 앉은 다음 필자는 가운데에 줄곧 서서 왔다갔다하며14명을 상대했던 것이다.
미국인 중에는 여자도 두 사람 끼어 있었는데, 한 분은 3단이라며 7점으로 두었는데 제법 바둑 맛을 아는 모양인지 뜻밖의 수가 나타나면 감탄하는 기성이 터져 나왔다. 이래서인지 모씨는『저 여자 바둑에 미친 중년부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또 여기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9점을 놓고 두는 사람들도 일제히 기보 용지를 옆에 놓고 일일이 기록을 해가며 둔다는 사실이었다. 필자와의 기념대국이라 하여 한 수도 어김없이 기록하는 터이어서 오히려 필자가 심판대에 오른 듯한 기분이었다.
아홉 점 짜리 하수들도 정석이나 행마는 제대로 되어 있어 중반전 무렵까지는 도대체 이 바둑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분간조차 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그럭저럭 얽히고 설켜 싸움이 벌어지고 생사문제가 생기고 보면 터무니없는 수를 놓을 때가 있다. 이때야 비로소 『아아, 형편없는 친구로구나』하며 안심하게 되는데, 그야말로 15점을 놓아야 할 상대라 해도9점으로 어느 정도 바둑이 되어 가는 까닭은 중반전까지 생기는 정석과 행마의 기초가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마가 죽고 계기가 안 되는 바둑도 끝까지 기록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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