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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기자는 고은맘] 나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아빠랑 백화점 문화센터에. 아빠가 고은이랑 노는 건지 고은이를 못살게 구는 건지.

남편은 ‘딸바보’ 입니다. 고은양에게 무한의 애정을 보냅니다. 가끔은 저도 질투할 정도로. 고은양도 그걸 아는지 아빠를 보면 ‘까르르’ 웃습니다. 하루 종일 놀아주는 엄마한테는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인데 말이죠.

그래도 고은이는 아빠가 제일 좋아요

딸바보라는 말의 어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일본어에 親(부모)와 バカ(바보)를 합친 ‘親バカ’라는 말이 있는데, ‘자식이 귀여운 나머지 부모로서 저지르는 어리석은 짓 (때문에 남의 눈에 어리석게 보임), 또는 그런 부모’를 가리킵니다. 이 親バカ라는 단어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어감과 의미가 묘하게 바뀌면서 딸바보라는 말이 생겼다는 주장이 있지만, 하나의 가설일 뿐이라네요. 아무튼 2010년경부터 주로 인터넷을 통해 딸을 가진 인기 스타나 스포츠 선수 등 유명인들에게 쓰이면서 일반화됐습니다. 카인즈(기사 검색 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2008년에도 딸바보라는 표현이 쓰인 기사가 나오기는 하네요.

지금이야 딸바보라는 말이 보통명사가 됐지만 제가 자랄 때만 해도 상황은 천양지차였습니다. 지난 주말 시골 친정에 다녀왔습니다. 남편이 고은양을 예뻐해 주는 걸 보며 엄마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 아빠가 잠깐 너를 안고 달래는데 지나가던 동네 어른이 아빠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남자가 돼 가지고…’ 하면서 혀를 차더란다. 옛날엔 자식 예뻐해 주고 싶어도 남의 눈이 신경쓰여서 마음껏 예뻐해 주지도 못했는데 말이지.”

그래서인지 저에게 아빠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어렸을 적에도 아빠한테는 마음 놓고 떼도 쓰지 못했습니다. 뭐가 갖고 싶어 조를 때도 아빠한테는 감히 시도도 못하고 엄마만 붙잡고 늘어졌죠. 제가 남들은 일상다반사로 한다는 갈색 머리 염색을 안 하는 이유도 거슬러 올라가면 아빠 때문입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친구ㆍ후배들과 함께 집에 내려갔는데, 인사를 드리자마자 제 염색한 머리를 보고 하신다는 첫 말씀이 “머리 그래가지고 오려면 오지 마라” 였습니다. 양아치처럼 갈색 머리로 염색한 딸을 동네 어른들께 보이기 창피하다는 거였습니다.

아빠 보면 침 흘리고 웃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서른을 넘기고... 갈수록 아빠는 작아지졌습니다. 많이 늙으셨고요. 이젠 아빠가 무서울 것도 없으니 다른 딸처럼 애교도 부리고 해야 하는데, 천성이 그런지라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고은양은 아빠에게 까르르 웃음을 보내고, 아빠에게 꼭 매달리며 아빠와 눈을 맞추고…, 아빠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데 말이죠.

지난 주말이 아빠 기일이었습니다. 2년 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이현택 기자는 ‘불효일기’를 연재하면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쌓고 있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생전엔 바쁘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이유로, 집에도 자주 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잘하면 되지, 했는데 그 ‘앞으로’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임종도 못 지켰습니다.

나중에야 들었습니다. 항상 무심한 듯 했던 아빠가 저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는지. 아빠가 돌아가신 후 아빠 친구분들을 뵐 때마다 그 분들은 “네가 란이냐. 아빠가 너 기자 됐다고 자랑 많이 하셨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전 아빠가 제가 뭘 하든 별 관심이 없고 시큰둥하고 무덤덤한 줄 알았는데 그저 표현을 안 하셨던 것 뿐이었습니다. 아빠도 ‘딸바보’였습니다.

남편과 고은양은 서로가 서로에게 아쉬움 없이 사랑하고 그걸 표현하고 했으면 합니다. 무조건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그리고 고은양을 무한히 사랑하는, 고은양이 무한히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아빠’가 있어 고은양이 부럽습니다.
저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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