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386' 4말5초 세대 … 캐스팅보트로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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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의 주부 김민진(가명)씨는 한 번도 자신이 보수적 성향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85학번인 그는 대학시절 운동권에 몸담지는 않았지만 민주화를 열망했던 시대의식만은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한 표를 던졌다. 무능한 야권에 대한 실망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딸이 대학에 입학하고, 곧 남편의 정년퇴직도 다가온다. 김씨는 “이념만이 정치적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김씨는 2일 “세월호 난리 뒤 드러나는 정부의 문제들을 눈감을 순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야당이 뭘 보여준 적이 있나요? 투표소 가기 전까지 망설일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왕년의 386 세대’들이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를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것이란 관측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한때 진보 세력의 구심점이던 386세대가 이제는 40대 후반-50대 초반의 나이에 이르렀다. 이른바 ‘4말5초’인 이들의 표심은 단순한 진보·보수의 이분법적 논리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이들의 고심이 깊어지는 까닭이다.

 역대 선거에선 40대가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 2030 대 5060 세대 대립 구도에서 나이로도, 유권자 수로도 중간층을 차지해왔기 때문에 이들의 선택이 승패를 갈랐다. 2002, 2007년 대선 때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 40대의 표심은 선거 결과와 거의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40대가 진보 성향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눈에 띄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 40대는 박근혜 후보에게 44.1%, 문재인 후보에게 55.6%의 지지를 보냈다.

 전문가들은 4말5초 세대를 단순히 생애주기에 따라 보수화되는 연령층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청년시기 민주화를 함께 경험한 세대적 특수성 때문에 사회적 지위는 이미 기득권층에 접어들었지만 머리는 여전히 진보적인, 복합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46~49세는 330만여 명, 50~55세는 508만여 명이다.

 윤희웅 민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지금의 55세 이하는 이전 세대에 비해 학력 수준도 높고 사회 비판 의식도 강하지만, 그렇다고 대안 정당으로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야권을 무조건 지지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야당에 대한 이들의 실망감이 지난 대선에서 표출되면서 선거 승패를 갈랐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20대의 탈(脫)이념화를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소년기 때 외환위기를 겪고 취업 준비를 하며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를 고스란히 맞았던 20대는 과거처럼 진보 일색으로 보기 어렵다. 지난달 27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도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를 지지하는 20대는 21.1%로 30대(13.4%)보다 더 높았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지금의 20대는 이념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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