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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고생대 생물 90%, 메탄하이드레이트와 함께 사라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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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호 25면

폐허가 된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 풍경 속을 걷고 있는 디키노돈.

1872년 12월 3일. 포르투갈 서쪽 1300㎞ 지점의 아조레스 군도(群島) 멀리서 표류하던 마리 셀레스트 호가 발견됐다. 배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은 물론 생쥐 한 마리도 없었다. 해적에게 당하거나 저항한 흔적은 없었다. 선원들은 감쪽같이 사라졌으나 이들의 실종을 설명할 단서는 없었다. 이 사실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였다. 선실 침대엔 옷들이 깔끔하게 개져 있었고 빨래는 가지런히 널려 있었다. 주방엔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일부는 식탁에 차려져 있었다. 선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구조대는 선원들이 배에서 뛰어내렸다고 결론 내렸다.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10> 고생대와 중생대 가른 대사건

1872년 항해 중 감쪽같이 사라진 선원들
페름기 말 아프리카의 분지엔 보통 크기의 초식동물 디키노돈이 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열(熱)폭풍이 불어왔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더웠다. 디키노돈은 굴을 파고 들어가 열기를 피했다. 하루 이틀 지난 후엔 다시 바깥을 마음 놓고 돌아다니길 기대했지만 시련은 길었다. 언제까지나 굴속에서 버틸 수는 없었다. 결국 굴 밖으로 나왔다.

세상은 이상하게 변해 있었다. 해돋이와 해넘이는 빨강·노랑·자주색으로 얼룩덜룩했다. 정체불명의 온갖 기체와 미세먼지로 인해 하늘 풍경이 변한 것이다. 며칠 뒤 참혹한 산성(酸性)비가 찾아왔다. 산성비가 내리면서 큰 나무가 사라졌다.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던 자리엔 죽은 식물들이 엎어져 썩어가고 있었다. 디키노돈은 먹을 것을 찾아 헤맸지만 입맛에 맞는 먹이는 보이지 않았다. 썩으면서 악취를 풍기는 식물들 사이에서 찌꺼기라도 찾기 위해 무기력하게 돌아다니던 디키노돈에게 치명적인 일격이 가해졌다. 북쪽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유입되면서 산소 수준이 내려간 것이다. 디키노돈은 숨이 가빠졌다. 날이 갈수록 더욱더 숨이 막혀왔다.

며칠 뒤 거센 폭우가 쏟아졌다. 악취를 풍기던 식물들이 비탈을 타고 쓸려내려 바다에 내버려졌다. 식물 뿌리가 흙을 단단히 묶어두지 못하니 흙도 속절없이 쓸려갔다. 디키노돈 앞엔 식물도 없고 흙도 없으며 오직 암석뿐인 황량한 풍경이 펼쳐졌다.

일주일 넘게 먹이 구경을 못한 디키노돈은 바다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해변에 자라고 있던 바닷말도 거의 다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수준이 높아지면서 해수면 아래 수십m까지도 영향을 미쳐 플랑크톤마저 궤멸했다. 플랑크톤을 먹이로 삼던 물고기들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했다. 이어서 작은 물고기를 먹던 큰 물고기들이 죽었고 상어 같은 큰 물고기도 오래가지 못했다. 바다 전체가 사체로 오염됐다. 수온은 상승했고 바다에서 황화수소가 방출돼 무(無)산소 상태가 됐다.

디키노돈이 죽지 못해 헐떡이며 누워 있었는데 어디선가 메탄가스가 방출되면서 온도가 더 올랐다. 디키노돈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거의 모든 동물과 더불어 디키노돈도 맥을 못 추고 죽고 말았다.

지금부터 5억4300만 년 전 생명의 대폭발이 일어났다. 여러 조건이 맞았다. 기후는 온화하고 산소 농도는 높아졌으며 생명은 마침내 눈을 떴다. 이때가 바로 고생대 캄브리아기(期)가 시작한 시점이다. 고생대는 캄브리아기→오르도비스기→실루리아기→데본기→석탄기→페름기로 이어지면서 자그마치 3억 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 사이에 몇 차례의 생물 멸종 사태는 있었지만 생물들은 바다를 벗어나 육지를 지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2억5100만 년 전 도도하게 이어지던 생명의 흐름이 거의 끊어지는 상태에 이르렀다. 이 사건을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이라 한다. 페름기는 고생대의 마지막 시대이며 트라이아스기는 중생대의 첫 시기다. 2억5100만 년 전을 기준으로 그 앞과 그 뒤의 생명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고생대에 살던 생물의 90%가 사라졌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옛날 생물 시대와 중간 생물 시대란 뜻으로, 고생대와 중생대로 구분한다.

종(種)의 다양성과 개체수를 늘리며 전성기를 누리던 지구 생명이 한꺼번에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다양한 이론이 나왔다. 페름기 말 흩어져 있던 대륙들이 판게아(Pangaea)란 초(超)대륙으로 합쳐진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학파가 있다. 작은 대륙들이 합쳐지면서 살기 좋은 해안선은 줄어들고 내륙의 사막지대가 늘어났으며, 육지 동식물들이 자유롭게 이곳저곳 넘나들게 되면서 생명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강한 종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또 이때 해수면이 200m 이상 하강하면서 대양의 부피가 줄어 해양 생물의 서식지가 감소했다는 이유도 들었다. 하지만 바다가 서서히 벌어지면서 대륙이 합쳐지는 과정은 2억 년에 걸쳐 천천히 일어난 사건이지만 멸종은 그에 비하면 훨씬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라서 마땅한 설명이 아니다.

운석 충돌로 인한 멸종설은 근거 약해
어떤 이들은 우주선(線)과 운석 충돌을 그 이유로 든다. 하지만 중생대 말 공룡이 멸종하던 시대의 지층과 달리 페름기-트라이아스기 경계면에선 운석에 풍부한 원소인 이리듐이 특별히 더 발견되지 않으며 운석 충돌의 강력한 증거인 석영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은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끈질긴 탐정은 실마리를 찾아내는 법이다. 1980년대 러시아의 지질학자들은 시베리아의 현무암 지대를 주목했다. ‘시베리아 트랩’이라고 하는 이 지역의 넓이는 390만㎢로 유럽연합(EU)과 맞먹을 정도로 광활하며 현무암의 두께는 자그마치 400~3000m에 이른다. 과학자들은 약 100만 년 동안 지속된 화산 활동의 시작점이 바로 2억5100만 년 전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때가 바로 대멸종의 시기와 겹친다. 그렇다면 시베리아 트랩이 대멸종의 원인일까.

빙하로 침식된 ‘시베리아 트랩’. 넓이는 유럽연합 전체 면적과 맞먹으며 두께는 400~3000m에 달한다.

과학자들은 시베리아 트랩이 형성될 무렵 산소의 농도가 급격히 떨어졌다고 본다. 대멸종이 일어나기 직전의 지층들은 석회암·이암·사암으로 구성돼 있는 데 반해 페름기 최후의 지층은 단조로운 흑색이암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지질학과 학생들에게 ‘빨강은 산화, 초록은 환원, 검정은 무(無)산소화’란 것은 상식이다. 철분이 산소와 결합해 산화철이 되면 빨간색을 띤다. 이 산화철이 퇴적되거나 매몰된 후 산소를 잃고 환원되면 초록색으로 변한다. 흑색이암이 검은색을 띠는 이유는 탄소가 높은 비율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산소가 정상적으로 있다면 탄소가 이산화탄소로 변하지만 산소가 없으면 탄소는 그대로 남게 된다. 이뿐만 아니다. 대멸종 시기의 지층에선 ‘바보들의 금’이라 알려진 황철석이 발견된다. 황철석은 무산소 조건에서만 생성된다.

페름기 말에 산소의 농도는 왜 급격히 떨어졌으며 이것과 시베리아 트랩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정상적인 상황에선 공기 중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농도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광합성이란 생명의 기체 순환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합성 체계가 망가지면 산소 수준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대한 화산 폭발은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화산은 폭발할 때 이산화황·염소·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이 기체들이 물과 결합하면 황산·염산·탄산이 돼 산성비를 이룬다. 쏟아지는 산성비에 식물이 감소하면 육지의 동물도 사라진다. 설상가상으로 산성비는 육지의 풍화 속도도 빠르게 한다. 식물이 사라진 땅은 쉽게 깎여나가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트랩 분출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자 산소 수준이 떨어지는 동시에 지구의 기온이 6도 정도 상승했다. 극지방이 따뜻해지고 얼었던 툰드라가 해빙됐다. 그러자 극지방 곳곳에 있던 냉동 상태의 기체 수화물인 메탄하이드레이트 저장고까지 녹았다. 그 결과 막대한 양의 메탄이 거대한 거품을 일으키며 해수면으로 올라와 터졌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도 더 강력한 온실가스다. 지구는 더욱더 더워졌다. 이로 인해 고생대 말 페름기에 살던 생물의 90%가 사라졌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동해에 많은 양이 매장돼 있다고 알려진 메탄하이드레이트는 바구니 모양으로 짜인 물분자로 구성된 고체 안에 갇혀 있는 메탄가스다. 메탄하이드레이트는 수압이 높은 곳에서 형성된다. 만일 100만 L의 메탄하이드레이트가 수면에서 터진다면 무려 1억6000만 L의 기체가 공기 중에 풀리게 된다. 시베리아 트랩으로 방아쇠가 당겨진 대멸종은 메탄하이드레이트의 배출로 절정에 달했다.

지구 생물, 매년 5000종 이상 사라져
마리 셀레스트 호 선원들의 비극적인 운명도 메탄하이드레이트 탓일 것으로 짐작된다. 선원들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 거대한 메탄하이드레이트 거품이 터졌다. 메탄하이드레이트는 분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공기 중으로 흩어지기 때문이다. 바다 밑에서 올라오는 진동으로 공기가 혼탁해지자 선원들은 모두 갑판으로 올라왔다. 이들은 신선한 공기를 찾아 헤매다가 배에서 뛰어내린 것은 아닐까. 이런 추측이 만일 사실이라면 우리의 운명은 2억5100만 년 전 아프리카의 디키노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재 지구에는 2000만~1억 종의 생물이 살고 있고 매년 5000~2만5000 종의 생물이 멸종하고 있다. 이 속도라면 800~2만 년 후엔 지구의 모든 생명이 사라질 것이다. 대략 100만 년에 걸쳐 일어난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은 이에 비하면 아주 온유한 사건이었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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