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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나무 지원 이면엔 날카로운 상업성 ‘웃픈’ 패션 서바이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그동안 국내에서는 패션을 내세운 TV 프로그램이 많지 않았다. 패션 잡지사의 세계를 그린 드라마 ‘스타일’과 동대문 출신 패션 디자이너의 성공 신화를 다룬 ‘패션왕’이 언뜻 떠오르는 정도? 드라마에 비해 오락 프로는 그나마 좀 있어서 디자이너 유망주들이 매주 미션 대결을 벌이는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가 제법 인기를 모았다. 최근엔 트렌드를 알려 주는 프로도 다양하게 나오지만 브랜드 협찬 냄새가 물씬 나는, 그래서 정작 패션은 없고 상표가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패션을 영리하게 다루는 프로를 하나 발견했다. 한 케이블 패션 채널에서 진행하는 ‘솔드아웃’이다. 제목 그대로 옷이 얼마나 팔릴 수 있는가를 승부처로 삼는 이른바 ‘패션 서바이벌 리얼리티 예능’이다.

프로그램의 윤곽은 이렇다. 일단 10명의 디자이너가 11주간 팀별 대결을 벌인다. 매주 미션이 주어지면 그에 맞는 의상을 제작하고, 모델들이 직접 무대에서 런웨이를 펼친다. 일반 오디션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심사위원들이다. 업계 전문가가 아닌 연출진이 선정한 일반 트렌드 쇼퍼 100명이다. 유행에 민감한 이들은 소비자의 감성을 그대로 반영, 구매 의사가 있을 경우 버튼을 누른다. 이 점수가 과반을 넘어야 디자이너에게 ‘솔드 아웃’의 영광이 주어진다. 반면 4주마다 미션 수행에서 최저 점수를 받은 두 명은 탈락한다.

이 프로가 다른 패션 프로와 다른 점은 두 가지다. 일단 참여한 디자이너들이 모두 현업에 있다는 것. 이미 브랜드를 론칭해 나름의 색깔을 구축해 가고 있는 이들이다. 그리하여 솔드 아웃을 못 받거나 탈락을 하게 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 대신 채찍만큼 당근도 확실하다. 이긴 팀에서 솔드아웃 선택을 받은 의상은 방송 직후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한정 수량으로 판매된다. 4회에서 우승한 디자이너 김해의 경우 제품이 최근 방송을 타고 10분 만에 매진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오락 프로를 홈쇼핑과 연결시키는 이 ‘유통형 예능’은 홈쇼핑 채널과 오락 채널을 함께 가진 CJ E&M만이 벌일 수 있는 형식이다. 그래서 시청 소감 역시 복합적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동전의 양면’이랄까. 마냥 박수만 칠 수도, 그저 삐딱하게 볼 수도 없다는 얘기다.

일단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홍보의 장을 마련해준다는 건 가장 큰 미덕이다. 김해·김형배·송유진·이지연 등 패션 동네에서 끼리끼리나 알던 유망주들을 일반 시청자도 관심 있게 보는 기회가 됐다. 또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상업적 감각을 심어준다는 점도 최고 혜택일 터다. ‘무플보다 악플’이라고, 떨어지더라도 자신이 만든 옷 한 벌을 제대로 평가받아 보는 쉽지 않을 기회를 얻은 셈이다. 여기에 나홀로 작업에 빠지기 쉬운 디자이너들에게 협업의 경험을 맛보게 해준다는 점, 아직 런웨이에 자신의 옷을 세워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더 없는 행운이다.

한데 동시에 뭔가 정도(正道)가 아니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결국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옷이 홈쇼핑의 수익을 내는 콘텐트가 되고, 시청자를 자연스럽게 소비자로 연결시키는 기획 의도가 빤해 보여서다. 자칫 디자이너들을 잘 몰랐던 시청자였다면 그들의 본래 감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팔리기 위해 만들어진 옷을 먼저 접해야 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한 기성 디자이너는 “우리나라 신진들을 죄다 동대문 시장과 경쟁시킬 참이냐”며 프로그램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찌 됐든 새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된 건 이제 패션 디자이너들은 방송이 키워 내고 또 방송이 이용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확실한 유통 채널, 홍보 창구가 없는 상태에서 신진 디자이너가 자력갱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마냥 칭찬도, 비난만 할 수 없는 건 딱히 현실적 대안을 찾을 수 없어서다. 이를 두고 속칭 ‘웃프다(웃기고도 슬프다)’라는 표현이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온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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