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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종 줄고 어로 장비 부족…사라진 동해안 파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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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해안 항구에서 「성어」「파시」 소리가 사라진지 오래다.
풍어 이야기로 긴 밤을 지새우던 모습도, 불야성을 이루던 항구의 불빛도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기잡이의 변천에 따라 어촌의 풍속도가 달라져 가고 있다.
동해안은 70년대 이후 각종 어종이 감소되면서 3대 어종인 명태·꽁치·오징어의 어로 풍속도가 변했다.
명태 잡이의 경우 1∼2월의 성어기가 되면 동해 어로 한계선 (북위 38도33분) 근해에 매일 1천여척씩 몰려 그물질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붐볐고 속초·거진항은 이들이 쏟아 놓은 하루 2백∼3백t의 산더미 같은 명태 더미로 파시를 이뤄 『개도 10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인심이 후했다.
68년 동해어로 한계선의 남하로 명태 어장을 잃게 된 어부들은 요즘 하루 2백∼3백 척이 출어, 쓸쓸한 고기잡이를 하고 있고 그나마 어획량도 형편없어 간간 들어오는 북양 명태가 황태 덕장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속초에서 20년을 살아왔다는 이종민씨 (54·속초시 청호동 28)는 『바다는 옛 바다로되 덕장은 옛 그대로가 아니다』며 해마다 4분의 1가량이 줄어드는 황태 덕장을 아쉬운 듯 쳐다봤다.
봄철 꽁치·멸치잡이도 70년대 초만 해도 북상하는 꽁치를 뒤쫓아 이동하던 선단은 자취를 감추었고 가뭄에 나듯 시험선만이 외롭게 오락가락 할 뿐이다.
오징어도 연안에서 먼 바다로 달아나 73년 이후 연안 7∼8「마일」 떨어진 곳에서 오징어 떼를 찾느라 켜 놓은 불로 수놓아졌던 바다는 적막만이 감돌고 울릉도가 중심 어장으로 되면서 오징어 잡이 어선은 오징어 「롤러」 몇개와 광주리 몇개가 전부였던 어구를 어군 탐지기·무전기·「로란」 (위치 측정기) 등 현대 장비로 중무장해야 했다. 그래서 한번 조업에 나서면 1개월 가량의 기간이 걸려 작은 통통배는 오징어잡이에 엄두를 못 내게 됐고 기름 「드럼」통과 어 상자를 싣고 떠나는 배는 자못 거창하기만 하다.
오징어 성어기면 골목과 언덕마다 뒤덮이던 건조 덕장은 자취를 감췄고 그 대신 냉동공장과 수출상사의 창고만이 포구를 지킬 뿐이다.
동운호 (20t)의 어부 한수봉씨 (61)는 『20년 어부 생활에 이처럼 격세지감을 느끼기는 처음』이라며 『정부의 근본 지원 대책이 없는 한 바다를 등질 어부들은 더욱 늘어나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속초=장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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