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이유」의 이직동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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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한국 경영자협회는 「여성 기능인력 이직동기 조사 보고사」란 통계 자료를 발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앙케트」응답자 3천명 가운데 38%는『임금이 적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은 65·2%가 저임금 이외의「정신적 이유」를 이직 동기로 들고 있어 관심을 끌만하다.
열거된 이유와 동기들을 대충 훑어보면 『장래성이 없어서』(25.3%),『상사가 싫거나 동료들과 마음이 안 맞아서』(13.6%), 『복지시설이 좋지 않아서』(10.2%), 『일이 힘들어서』(l6.2%)등 주로「질적인 불만」사유가 대부분이며, 학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그 점은 더 현저하게 나타났다고 한다.
작년 9월 현재 우리 나라 여성 근로자의 총수는 1백28만9천여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한국의 경제 성장과 기업 발전상 여성 기능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 여성인력에 대한 인력관리 행정 역시 초창기 적인 시행착오나 비과학적 관습을 탈피하여 보다 과학적이며 현대적인 인사관리법에 충실해지지 않으면 안될 단계에 이르렀다 하겠다.
그것은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제1차적으로는 능력에 따른 보다 현실적인 급여체계를 갖추는 것일 수도 있겠고 또 다음으론 보다 능률적인 작업시설을 확충해주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 못지 않게 더 근본적인 사항은 단순한 물질적 조건 이상의 것, 다시 말해 인격적이고 인간적인 처우향상에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산업사회와 거대 조직 속에서의 인문관계는 자칫 비인격적인 양상으로 일탈하여 정서적·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한국이건 외국이건을 막론하고 상당수의 직장 근무자들이 『여성이기에』또는 『하급자이기에』 당하는 직장에서의 인격적인 침해와 각종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가 적잖이 산견된다. 『여성으로서』 의 최소한의 인격방위를 위해 반드시 필요로 하는 전용시설이나 필수조건이 예사로 미비해 있다든지, 『여성이라고 해서』 제약되어서는 안될 직업의 장기적 발전성과 장래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돼 있지 않다든지, 또는 상대방이 『여성이거나 하급자임을 기화로』해서 가해지는 정신적·인격적 경지와 홀대가 비일비재하다든지 하는 따위가 바로 그런 것이다.
여성이란 본래적이든, 또는 문화 전통적이든 간에 신체적으론 남자보다 약하고 성격적으론 지극히 섬세하다. 그래서 남성 근무자 위주로 짜여진 오늘의 직장 환경 속에서 많은 여성근로자들은 곧잘 심신의 피로와 실망과 괴로움에 빠져들기 일쑤인 것이다.
거기다 일부 독선적인 상사나 동료들의 인격적 침해와 인간적인 경시마저 겹치게 될 때 근로자·생산자로서의 그들의 직장에 대한 열의와 작업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리는 없는 것이며 이 손실은 결국 직장과 사회 전체의 손실로 돌아가는 것임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나라 각 직장과 작업장의 인력관리와 인간관계가 많이 합리화되고 근대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직장 사회엔 근무자들의 정서적 교란 요소와 현실적 애로 요소를 과학적이고도 제도적인 장치로 방지하려는 배려와 대책이 완비돼 있다고는 하기 어려우며 이점 앞으로의 연구가 경주되어야 할 문제점이라 하겠다.
직장 근무자들은 생산 단위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격적 주체이며 그에 합당한 예우를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하와 동료간의 「인간관계 불순」이라는 정신적 불만 때문에 이직한 숫자가 많았다는 사실에서 사회 각계와 정책 당국은 귀중한 참고 자료를 얻을 수 있어야 하겠다. 안정되고 건강한 직장환경을 위해 보다 자상하고도「인간적」인 대책 수립을 대망해마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여성 근로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또한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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