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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좌의 종말(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74년4월 들어 백악관 집무실의 녹음「테이프」제출 압력이 가중됐다. 정치분위기는 「테이프」를 제출하라는 하원법률위원회의 요구에 응할 도리밖에 없게 되어 있었다. 이 기록은 1천3백「페이지」의 방대한 내용이었다.
백악관 집무실에서의 이야기는 물론 고차원의 냉정하고 중요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정치적 사활 문제에 이르러서는 좌절감·우려·초조에 어설픈 현실 대응책 등 지저분한 내용도 있었다. 이 기록으로 말미암아 나는 국민들이 알면 언짢은 일들을 드러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녹음 내용을 검토>
일부 「테이프」의 공개 후 공화당에서조차 내가 사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5월5일, 의회의 특별조사관 「재워스키」는 백악관 수석보좌관 「헤이그」에게 내가 「워터게이트」대배심에 의해 불기소 공범자로 규정됐다고 얘기했다. 「재워스키」는 소환된 64개의 녹음「테이프」 가운데 18개를 건네준다면 대배심이 나를 공범자로 규정했다는 것을 공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여러 시간 동안 녹음「테이프」를 틀고 72년6월23일 「봅·홀드먼」과의 대화내용을 들었다.
「존·딘」과 「존·미첼」이 조사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손을 쓰자고 했다고 「홀드먼」이 내게 이야기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요는 CIA로 하여금 FBI의 수사를 견제시키자는 이야기였다. 더 이상 「데이프」를 공개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 22일 「데이프」를 제출하지 않겠다고 하원법률위원회에 통고했다.
74년5월20일 연방지법은 「재워스키」의 「테이프」제출 요구를 승인했다. 나는 이 결정에 항소했다.
「재워스키」는 대법원이 직접 결정을 내리도록 요청, 5월 31일 대법원은 이를 수락했다.
하원법률위원회는 나의 혐의에 대한 증언 청취를 6월 21일 모두 끝냈다. 무려 7천여「페이지」에 달하는 38권의 방대한 기록이었다.
증언 분량은 어마어마했으나 그 내용은 보잘것없었다. 나의 행동과 관련된 직접적인 증거는 거의 없었다.

<무서운 재워스키>
6월 27일 하원법률위원회위원장은 기자들에게 민주당의원 21명이 모두 탄핵결의에 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하원법률위원회가 나에 대한 탄핵표결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하원법률위원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7월23일 아침 공화당 소속 「로런스·호건」의원이 나의 탄핵에 지지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날 남부 출신 민주당 의원 3명이 내게서 등을 돌렸다는 보고를 받았다.
나는 한동안 망연했다. 세 사람 모두를 잃는다는 것은 법률위 표결에서의 패배를 뜻했다.
그것은 또 탄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 날밤 나는 밤늦도록 서재에 앉아 이틀 뒤 「텔리비전」으로 방송될 경제문제에 관한 연설을 준비했다.
연설문 한 귀퉁이에 무심코 긁적거렸다. 『자정 12시 1분, 태통령직으로서는 최악의 순간. 대법원 결정을 기다리자.』 그러나 그렇게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헤이그」가 전화로 「테이프」를 제출하라는 대법원 결정이 내려졌다고 알려왔다.
『만장일치인가?』
『만장일치입니다』
제출해야할 「테이프』중에는 「홀드먼」과 내가 국가안보라기보다는 정치적 이유로 CIA에 FBI의 사건조사를 제한하도록 할 것을 토의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며칠 전인 7월21일 「헤이그」는 처음으로 6월23일의 대화기록을 읽고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이같은 것을 남겨둘 수가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읍니다.』

<침묵 지킨 「포드」>
8월1일 목요일. 「헤이그」에게 사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나는 「헤이그」와 「지글러」에게 『목요일 밤으로 결정했다. 누구를 탓하지도, 볼품없는 짓도 않겠다. 명예롭게 사임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침묵에 빠졌다. 『어쨌든 잘한 일이지. 정말 잘한 일야. 그렇지 않아?』
나는 자문자답했다. 사임을 위한 준비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날 아침 「헤이그」는 「제리·포드」부통령에게 대통령 취임을 준비하도록 얘기를 해 놓았다.
이날 저녁 비서 「로즈」여사를 불러 가족에게 내가 사임할 수 밖에 없게된 사실을 알려주도록 일렀다.
1974년8월8일은 내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마지막으로 온종일 봉사한 하루였다. 상오11시 「포드」부통령이 찾아왔다.
내가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방안은 정적 속에 휩싸였다.

<「가장 어려운 말」>
우리는 당면한 문제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포드」는 특별히 충고할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키신저」가 절대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라고 충고했다.
이날 저녁 9시에서 정확히 12초 후 책상을 향한 TV「카메라」에 붉은「램프」가 켜졌다. 미국과 전세계를 향해 연설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미처 매듭짓지도 못한 전장을 떠난다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의회의 지지도 없는 터에 이 싸움을 계속한다면 국사를 마비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여지껏 내가 해온 말 중 가장 어려운 대목에 이르렀다. 나는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따라서 나는 내일 정오 대통령직을 사임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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