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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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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볼로냐」는 인구 50만명 남짓한 고도다.「이탈리아」북부「롬바르디」평원에 자리잡고있다.「필렌체」에서 자동차로 1시간쯤 북행하면 이 단아한 도시에 들어선다.
첫눈에 인상적인 것은 청결한 풍경. 건물도, 그 지붕의 기와들도, 벽도 오늘 아침에 세수라도 한 것 같다
이 도시를 에워 싸고있는 수풀하며, 가로의 수목들도 하나같이 깨끗하고 싱싱하다.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거의 예외없이 지저분하게 마련이다. 그 하얀 대리석상들 조차 갈색의 때를 입고 볼상 사납게 얼룩져 있는 것이다. 비록 이끼 낀 역사의 장을 말없이 보여주는 노천 박물관 같은 도시들이긴 하지만, 어딘지 노추의 그늘은 숨길 수 없다.
그런 중에서 유독「볼로냐」는 바로 그런 인상을 말끔히 씻어 준다.
요즘은 공산당출신이 시청을 지배하고 있어서 이방인의 심정으로는 어설프게 느껴지는 구석도 없진 않다.
그러나「볼로냐」의 그처럼 단정하고 우아한 인상을 마주 대하고 보면 역사의 품위와 격조는 오래 묵은 포도주의 향기와 같아서 숨길 수 없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볼로냐」에는 유명한 대학이 있다.「나폴리」에 있는「살레르노」대학과 함께 세계 최고대학으로 알려진「볼로냐」대학. 「살레르노」대학은「의학대학」으로 융성했지만, 「볼로냐」대학은 법률학교의 고향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률의 빛』으로 불리는「이르네리우스」는 이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며, 비로소「로마」법대전의 주해를 붙였었다. 그가 세운「스토디음·제네랄레」는「로마」법의 최고 연구기관이 되었다. 1200년대에 이 대학의 학생수가 1만명, 그것도 대부분이 외국의 유학생이었다는 사실은 가히 그 권위와 전통을 짐작하게 한다.
「단테」나「페트라르카」와 같은 시성도 한때 이 대학을 다닌 일이 있었다.「볼로냐」대학의 교수는 시험을 치지 않고도「유럽」의 어느 대학에나 출강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볼로냐」는 학문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교통의 요충지이기도하다.
지금도 거미줄 같은 철도가 이 도시를 지나고 있으며, 따라서 상업도시로서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에밀리아」지방은「파시즘」의「뭇솔리니」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1차대전 무렵부터 지하에서 공산주의가 움트고, 2차 대전중엔 대독「래지스랑스」가 대단했었다. 그만큼 민중의 정치의식은 긴장되어 있는 것 같다.
각설하고 바로 그 도시의 축구「팀」이 한국을 방문, 우리「팀」과 대전을 갖는다.「이탈리아」의 축구는 원래 평판이 높다.
도시가 인상적인 곳이어서 그 축구도 불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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