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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헌장이 뿌리를 내리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또 다시 어린이날을 맞는다. 5일은 56번째 맞이하는 그날이다. 해마다 이날이면 전국 곳곳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푸짐한 행사가 벌어진다.
이날 하루만이라도 다채로운 행사와 너그러운 보살핌으로 온 국민이 우리의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향해 아낌없는 축복을 보내주고, 어린이들의 환호가 신록처럼 싱싱하게 우리 사회전체에 드높게 퍼지는 것을 볼 수 있는게 기쁘고 대견스럽다.
그러나 이날 하루 성인 사회가 베푸는 행사가 아무리 푸짐하다해도 그것이 연례적인 하루만의 행사로 끝나버리는 한 56년 전 어린이날을 제창했던 큰 뜻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 헌장을 제정했던 정신이 이 땅에 뿌리박게 되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어린이는 나라의 새싹이요 그들은 어른의 아버지라고까지 하지 않는가. 그들이야말로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 나갈 내일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기고 곧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는데는 그들을 둘러싼 오늘의 환경이 너무나 살벌하다.
지하도 입구나 육교 위에서는 구걸의 도구로 학대받는 「앵팔이」를 예사로 불 수 있는 것이 우리 나라의 실정이다. 구멍 가게에는 어린이를 병들게 하는 무수한 부정 식품, 동심에 상처를 주는 조악 어린이용품과 유해 장난감들이 범람하고 있다.
여기다 우리 사회에 풍미하고 있는 상업주의 기풍은 어린이들마저 이윤 추구의 전략적 대상으로 겨냥해서 무자비한 공격을 가한다. 어린이날을 돈벌이의 호기로 삼아 호화판 잔치를 마련하는 일부 관광 「호텔」의 처사도 바로 이런 풍조가 빚어낸 탈선적 양상의 하나일 뿐이다.
이처럼 냉혹한 환경과 사회 기풍 속에서 어린이들의 심성과 행동이 건전해질 수는 없다.
어린이를 씩씩하게 키우려면 어린이에 대한 어른들의 사랑이 바다와 같이 깊고 넓어야 한다. 결코 익애나 편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린이를 극단적인 천대와 무관심 속에 버려 두어서도 안되지만 부모의 허영심이나 지나친 교육열 때문에 정신적·육체적으로 압박해서도 안 된다.
쉴새 없는 과외 수업 등 과보호의 채찍 아래서는 건전한 심신의 발달이 저해 당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어린이 문제는 실로 어린이들을 부모들의 비뚤어진 허영심으로부터 해방시키는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도시 부유층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더욱 절실한 문제로 등장한지 이미 오래다.
이와 함께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른 위주로 된 왜곡된 사회 구조에 대한 반성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호사스런 「맨션·아파트」 광대한 유흥 오락 시설, 고급 소비 제품 등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으나 조그마한 어린이 놀이터는 언제나 모자란다. 어린이는 잠자는 시간외에는 항상 마음대로 뛰어 놀고 싶어한다. 그러나 놀이터가 없어 어린이들은 축대가 내려앉는 꽁지나 차량의 왕래가 잦은 노장에서 놀다가 불구가 되고 생명을 잃는 일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l년 내내 그늘에서 움츠리고 있는 심신 장애아와 버림받은 상태에 놓여 있는 고아 등 불우 아동 문제다. 이들 특수 어린이들에 대한 사전적 예방과 함께 조기 치료·교육·직업 훈련 등 재활 사업을 지원하는데 성인들과 사회의 보다 적극적이고 따뜻한 마음가짐이 요청된다.
본사가 벌이고 있는 불우 아동 결연 운동 같은 사회적 지원책과 해결책에 국민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 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하겠다.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에 대한 생각과 시책, 그리고 환경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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