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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 <20화> "치료법 없나봐"라는 아버지의 말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아…. 점심이나 먹을까.”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한숨을 깊게 쉬면서 전화를 하시는 것을 보니,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닌 것 같다. 마침 쉬는 날이기도 해서 아버지와 점심을 한 끼 하기로 했다.

집 근처에 있는 세발낙지 식당을 찾았다. 연예인 누가 와서 먹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유명해졌던 집이라고 한다. 점심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5팀 정도가 와서 먹고 있다. 낙지전골에 세발낙지를 좀 시켰다.

“거의 몇 주 만에 제대로 식사 좀 하는 것 같구나.”

숟가락을 몇 차례 뜬 아버지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최근 몇 주는 정말 잊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방사선 치료로 힘이 들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통증으로 정말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라고 했다. 때로는 늑골 인근이 너무 쿡쿡 쑤셔서 아픔을 잊으려고 벽에 머리를 쾅쾅 박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할 말이 없었다.

다행히 10회의 방사선 치료는 효과가 어느 정도 있었고, 지금은 이따금씩 통증이 엄습하지만 참을 수 없을 만큼 통증이 계속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음식이 어떻고, 이전에는 낙지를 먹고 싶었는데 아버지 댁 근처에 있는 식당은 그리 낙지가 신선하지 않고, 문어를 수산시장에서 사다가 먹는 것이 더 좋다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반쯤 먹었을까. 아버지가 본론을 꺼낸다.

“나, 치료법이 더는 없나봐.”

울컥했다. 울지 않으려고 했다. 5분 정도 별 말 없이 ‘하하하’ 같은 헛웃음소리만 내면서 밥을 먹었다.

침묵을 깬 건 아버지였다.

“문어 머리가 익었구나. 정력에 좋다니 네가 먹거라.”
“두 마리니깐 하나씩 드시죠.”

낄낄대면서 하나씩 먹었다. 고소한 맛이 좋다. 아버지도 식당 음식이 아주 맛이 좋다고 했다. 이후에는 약간은 담담하게 아버지와 식사를 하고, 맥주 한 병도 나눠마셨다. 어차피 말기 암인데, 맥주 반 잔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물론 내일부터는 술은 입에도 대지 않으실 것이란 것 안다. 평소에 회도 거의 안 드시지만, 오늘은 세발낙지 회도 한 접시 먹었다. 언제 또 먹겠냐는 마음에서다. 전문가들은 생선회는 일반인에게도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고, 면역력이 떨어져 비브리오패혈증에도 걸릴 우려가 있는 만큼 피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한다.

그냥 오늘은, 그냥 드셨다. 회도, 맥주 반 컵도.

호스피스 병동 알아보기

아버지는 또한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반드시 호스피스 병동 입원 절차와 비용이 어떤지에 대해서 소상히 알아보라고 내게 지시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고통 속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학병원 호스피스 병동에는 자리가 거의 없다. 주지의 사실이다. 아픈 사람은 쏟아지겠지만, 그 사람들, 그 중에서도 말기 암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병동의 숫자는 턱없이 모자란다. 물론 수술환자를 위한 병실, 항암제 투여 환자를 위한 병실도 모자라겠지만, 호스피스는 빈 병상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아버지 댁 근처에 있는 한 공립 종합병원에 호스피스 병동으로 전화를 해봤다. 얼마 전에 개원했다는데, 벌써 자리가 없을까. 물론 당장은 불편하지만 거동도 가능하고, 식사도 하실 수 있기 때문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 미래란 어찌될 지 모르는 노릇이다. 전화를 걸었다.

나: 저희 아버지가 암환자신데, 식도암이 폐와 위, 늑골 등으로 퍼져 있어요. 당장은 아니겠지만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보려고 전화드렸는데요.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요.
간호사: 일단 외래를 오셔서 진료를 보시고 결정하셔야 해요.
나: 대학병원에서 쓰는 진통제 같은 것은 다 있지요?
간호사: 네, 거의 다 있어요.
나: 호스피스 병동에 자리는 있나요?
간호사: 지금은 모두 환자가 있고요. 대기하셔야 해요. 대기자는 1명 계십니다.
나: 병상은 몇 개죠?
간호사: 5개요.
나: 비용은 어느 정도 인가요?
간호사: 월 50~60만원 정도 들어요. 저희는 다른 병원에 비해 저렴한 편이죠. 그런데 호스피스 병동에는 간병인 또는 간병을 할 가족이 있어야 해요. 간병인 없는 병동은 가격이 더 비쌉니다.
나: 어느 정도인가요.
간호사: 월 130만원 정도 됩니다.
나: 감사합니다.

월 130만원이 적은 돈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최악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감기 치료만 해도 몇 만원은 기본으로 나온다는 미국 거주 친구들의 이야기에 비하면, 천국 아닌가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어머니 역시 생계를 위해 직장을 나가고 있고, 나 역시 일을 하고 있는데, 간병을 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자영업을 하는 자녀가 8남매 있어서, 자녀들의 간호를 받다가 돌아가셨는데. 나는 그런 것은 꿈도 못 꾼다.

결론은, 약간은 기우였다. 아버지가 다녀온 대학병원에 전화로 문의했는데, 아직까지는 적극적 치료 단계라고 한다. 2주 후 약물을 바꿔서 새로운 항암치료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게다가 아버지는 거동도 가능한 상태 아닌가. 기우였다. 물론 언제 현실이 될지 모르는 노릇이지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으니 기운이 빠진다. 오히려 내가 배가 아픈 것 같아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버지는 지금도 무척 쇠약하지만, 앞으로 서서히 더 쇠약해 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 가족의 몫이다.

* ps. 아버지가 요양병원도 알아보라고 하여, 대학병원에 꽂혀있는 수십 장의 요양병원 홍보전단을 집에 가져와서 읽었다. 한 장 한 장을 넘기는데 어째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는 불효자가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찜찜했다. 물론 통증을 참느니, 병원에서 간호사의 관리 하에 주사를 맞는 것이 낫다. 하지만 요양병원은 대부분 치매환자가 많고, 암환자를 받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서울 시내에 있는 곳은 더욱 적기도 했다. 다행히 아직은 요양병원 또는 호스피스를 알아보지 않아도 될 단계라 천만 다행이다.

* ps2. 어머니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는 병원비가 갑자기 많이 든다. 1000만원 정도 든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 낭패가 없다.” 그동안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경험을 한 어머니의 말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그 1000만원을 모으는 것보다, 이번 주에 몇 만원 들여서 아버지와 고기라도 먹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아버지는 “너는 살 빼야 하니 먹지 말거라”고 농을 치시겠지.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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