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600년 전 백제 금동관 경기도 화성서 첫 발견 … 역사 교과서 새로 쓰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경기도 지역에서 처음으로 백제 금관이 발굴됐다. 화성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택지개발지구 내 간선도로 공사 구간에서 백제 시대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포함한 4세기 후반∼5세기 전반의 유물이 대거 출토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국문화유산연구원(원장 박상국)은 26일 “화성시 발안에서 양감을 잇는 동서간선도로가 지나가는 향남읍 요리 일대 11개 유적 가운데 H 지점 1853㎡(약 560평)을 발굴한 결과 삼국시대 목곽묘(木槨墓·덧널무덤) 안에서 백제 유물들을 대량 수습했다”고 밝혔다.

 유물은 금동모자(관모·冠帽) 한 점, 금동신발인 식리(飾履) 한 점, 금제 귀고리 한 점, 둥근 고리가 있는 칼(환두대도·環頭大刀) 등 10여 점이다. 재갈을 비롯한 마구류, 화살을 담는 통인 성시구(盛矢具) 등도 포함돼 있다. 목관을 짜는데 필요한 꺾쇠와 관못도 목관 내부에서 나왔다. 목관 제작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자료라는 평가다.

 발굴된 유물 가운데 금동관은 지금까지 7점만 발굴됐을 정도로 귀한 유물이다. 금동 신발 또한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 수가 20점이 안 된다. 금동관과 신발의 경우 그 자체로 최소한 보물급 이상이라는 평가다.

 한국문화유산연구원 현남주 학예연구실장은 “무엇보다 경기도 지역에서 백제 금관이 처음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백제 금관은 충남 공주 수촌리 등 충남 이남 지역에서만 발굴돼 왔다.

 금관 등은 위세품(威勢品)으로 분류된다. 백제 중앙정부가 지방 세력을 다스리는 방편으로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하사했던 물건이었다. 경기도 지역에서 금관이 새롭게 나옴에 따라 5세기 전후 백제 중앙정부와 경기도 화성 지역에 거점을 두었던 지방 세력간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할 여지가 생겼다.

 공주대 이남석(사학과) 교수는 “한성시대(BC 18년~AD 475년) 백제의 중앙과 지방간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굉장한 자료”라며 “백제 사회 연구의 기본 틀을 허물어트릴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는 백제가 충남 이하는 어느 정도 자치권을 인정하는 분권통치를 하되 경기도 지역은 직접통치했다는 게 정설이었으나 금관의 발견으로 경기 지역까지 분권통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향후 학계의 면밀한 검토와 토론을 거쳐 어떤 결론이 날지 주목된다.

 이번 조사지역인 화성시 향남읍 요리 일대는 주변에 길성리토성을 비롯해 소근산성, 마하리·당하리 고분군, 발안리 마을유적, 기안리 제철유적 등 삼국 시대 대규모 유적군이 밀집해 있다. 1930년대 대금구(帶金具·허리띠 장식품), 환두대도, 각종 마구류 등이 출토된 사창리 유적이 이번 조사지역에서 불과 100m 거리다.  

 현 실장은 “한강에서 시작해 탄천과 용인 신갈천, 발굴 지역 일대의 황구지천을 거쳐 안성천을 지나 결국 서해안에 이르는 물길을 따라 크고 작은 세력들이 자리잡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화성 지역이 한강 하류와 서해안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요충이다 보니 역사적으로 다양한 유적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한편 이번 조사지역 안에서는 분구묘(墳丘墓)도 확인됐다. 분구묘는 흙이나 돌로 봉분과 같은 형태의 분구를 먼저 조성한 뒤 그 안에 매장시설을 만드는 무덤 양식이다. 경기 지역에서는 지금까지 김포 운양동과 양곡·양촌 유적 등 김포지역에서만 발견돼 이번이 두 번째다. 지금은 분구묘 안에 일반 묘가 있어 발굴조사를 할 수 없다. 다음달 이장이 되면 본격적으로 조사할 수 있다. 한국문화유산연구원은 27일 오후 1시 발굴현장에서 이번 발굴의 의미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긴급 학술자문회의와 설명회를 연다.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최병헌 학술원 회원 등 전문가들이 자문위원으로 참가한다. 이번 주 중 나선화 문화재청장도 현장을 방문할 계획이다. 그만큼 이번 발굴을 의미심장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