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명 수습 뒤 입원 … 다시 팽목항 찾는 '빨간 잠수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세월호 사고 초기에 한 팀이 돼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민간 잠수사 조정현(오른쪽)씨와 안길필(가운데 검은 옷)씨. 두 사람은 25일까지 발견된 희생자 288명 중 30명을 찾아냈다. 조씨는 잠수병 때문에 후송돼 일주일간 치료를 마치고 26일 다시 현장에 합류한다. [사진 조정현씨]
조정현씨

한 달간 세월호 구조·수색 작업을 하면서 희생자 30명을 찾아냈다. 그러곤 잠수병에 걸렸다. 지난 17일 헬기로 경남 사천의 삼천포서울병원에 옮겨져 치료받기 일주일. 다시 짐을 챙겨 전남 진도로 향했다. 25일의 일이었다. 전날 면회 온 가족은 “그만하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실종자 가족들 얼굴이 어른거린다”며 가족을 뒤로했다. 26일부터는 다시 바지선에 오르겠다고 한다.

 민간 잠수사인 조정현(37)씨. 그는 세월호 사고 당일인 지난달 16일 한국해양구조협회의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가 이튿날부터 물에 뛰어들었다. 해양구난업체 언딘에 배속돼 안길필(42) 잠수사와 짝을 이뤄 일했다. 해양구조협회 황대식 본부장은 “조씨와 안씨가 발견한 희생자가 전체(25일 현재 288명)의 10%를 넘는다”며 “전체 잠수사 중에서도 손꼽을 성과”라고 말했다.

 둘이 함께 잠수한 뒤 배 안에는 주로 조씨가 들어가고, 안씨는 공기공급 호스가 꼬이지 않도록 잡아줬다. 초기엔 하루 많게는 세 차례까지 물에 들어갔다. 한 번 들어가면 24시간은 쉰다는 원칙을 어겼다. 일손이 모자라서였다. “단원고 말고 안산의 다른 고교에 다니던 사촌동생 생각 때문일까요. 한 번이라도 더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공기호스가 장애물에 걸려 잠깐 숨이 막힌 적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신적 후유증 같은 것이 생겼다고 한다. 물속에 들어가면 찾아낸 희생자 얼굴이 환영처럼 나타나는 느낌이 들어 흠칫 놀라곤 했다. “바지선이 전복돼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이달 초 기상 악화로 사흘간 구조·수색이 중단됐을 때다. 해난 사고 현장에 아버지와 함께 출동해 사람을 구하는 꿈을 꿨다. “이튿날 두 명을 찾았습니다. 그런 꿈을 꾼 걸 보면 구조·수색이 멈춰진 게 참 안타까웠나봅니다.”

 꿈에 나온 것처럼 조씨의 아버지도 잠수사다. 사촌 형 두 명도 마찬가지다. 조씨는 아버지 뒤를 이어 고교 3학년 때 잠수를 배웠고, 이듬해 잠수업체에 취직했다.

 구조·수색에 참여하고 꼭 한 달째인 지난 16일, 잠수를 마치고 감압 체임버에 들어갔다 나온 뒤였다. 세상이 빙빙 돌고 손에 마비가 왔다. 결국 이튿날 헬기로 병원에 후송됐다. 조씨는 “장애물을 치우려고 너무 힘을 쓴 게 문제였던 것 같다. 깊은 바닷속에서 힘을 쓰면 산소 필요량이 갑자기 늘어 잠수병에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일주일간 하루 4시간씩 고압산소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선 “고압산소 치료는 더 받지 않아도 되지만, 앞으로 3주는 쉬어야 한다”고 했다. 부인은 “위험한 물속에 그만 들어가라”고 말렸다. 6살 난 딸을 곁에 두고서였다. 하지만 조씨는 다시 진도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세월호 구조팀 중에 빨간 잠수복을 입는 건 저뿐입니다. 딸이 생긴 뒤부터 입었습니다. 만일 잠수했다가 사고를 당하면 발견되기 쉽게 하려고요. 잠수복에 이름과 전화번호도 적어놨습니다. 당장 내가 그렇게 해서라도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은데, 아직 바닷속에 남은 실종자와 그 가족들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당장은 물에 들어갈 수 없어 바지선 위에서 공기줄을 잡는 역할 등을 할 계획이다. 그는 “배 안이 무너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동료 잠수사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구조팀은 25일 사고 해역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오후부터 수색을 중단했다. 지난 22일부터 이날까지 나흘 동안 희생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후 9시 현재 희생자는 288명, 실종자는 16명이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가족들이 동의하면 선체 바깥벽 일부를 잘라낸 뒤 크레인으로 장애물을 들어올리고 수색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진도=최종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