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는「아파트」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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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세청의「아파트」투기에 대한 단속이 실시되면서 전매가 어려워지자「아파트」단지 곳곳에서 분양 받아 놓고 미처 굴리지를 못해 빈 상태로 남아 있는「아파트」가 무더기로 나타나는 기현상을 빚고 있다.
유령선처럼 텅빈 이들「아파트」는 서울잠실지구에 지은 주택공사의 고층「아파트」단지에만도 자그마치 7백59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 50%이상이 집을 장만하지 못하고 있는 극심한 주택난 속에서 이처럼 엄청난「베이컨트·룸」(공방)이 남아 있다면 이는 하나의 희화인 동시에 커다란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무주택 서민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돈 많은 투기꾼들의 장난이 빚은 웃지 못할 연극의 현장인 것이다.
자금을 주체 못하는 투기꾼이 실수요자를 제쳐놓고 재산을 더 불리려다 단속이 실시되는 바람에 일부나마 마각을 드러내고만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빈「아파트」는 불공정한 자원배분·일확천금의 투기풍조·가진 자의 비윤리성 등 오늘날의 비뚤어진 한국적 사회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상징적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손해보는 것은 결국 푼푼이 성실하게 돈올 모아 내 집을 마련해 보려는 실수요자들이다.
투기의 횡행으로 집 값이 폭등하고 무주택서민이 집을 장만할 수 있는 기회가 봉쇄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은 본래 주택을 대량 생산함으로써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투기꾼 한 사람이 심지어 1년에 22번씩이나 3억7천여 만원 어치를 사고 파는 사례까지 있었다니「아파트」건설의 공익성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더욱이 무주택서민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돼야 할 국민주택자금으로 건설된 주공「아파트」까지 투기꾼의 손에 들어가 이들의 재산 증식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었다면 이는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문제가 아니다.
당국은 그 원인을 규명하고 이 같은 현상을 빚게 한 응 당의 책임을 져야 마땅할 것이다. 여기 투기행위가 명백한「아파트」청약 자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분양을 취소해서 실수요자들에게 재 분양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이런 단호한 조치가 없이는 성실한 노력이나 저축으로 짐을 마련하려는 서민의 꿈은 끝내 어리석은 짓이 되고 반대로 단기차익을 거두어들이는 영악한 자들만이 오히려 똑똑하고 잘난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이런 풍조의 만연은 사회적 불균형을 갈수록 심화시켜 사회적 마찰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는 독소임을 알아야 한다.
투기풍조를 없애려면 물론 정부가 안정기조정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또 물가가 안정되리라는 것이 국민에게 널리 인식되도록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적 대응과 병행해서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심성에서부터 국민의 사회적 행동「패턴」, 그리고 도의심에 이르기까지 사회전반의 분위기 정화를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자기의 욕구나 이익을 위해서는 선악의 분별조차 외면하려는 사고를 먼저 뿌리 뽑아야 한다.
현대의 도시 집중적 생활「패턴」은 경쟁을 과열시키고 이기심을 더욱 고조케 하며 띠라서 인심도 각박해지기 쉽다. 그래서 자칫 제한된 기회 앞에 초조한 나머지 이웃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한 걸음 물러서서 서로를 생각해 볼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인간의 삶의 본질이 돈을 버는 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타이르고 돈에 대한 참된 철학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족을 모르는 욕심은 아무리 금전적 성공을 거둔다 해도 항상 가난한 자로 남는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길의 첫걸음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데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아파트」투기와 같은 심리적 욕구도 진정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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