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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와야의 동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우리나라에서 지구를 꿰뚫으면 어디가 나올까. 지구의를 돌려보면 남미의 남단쯤이 될 것 같다.
여기는「아르헨티나」와「칠레」가 나란히 길게 뻗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선 그야말로 지구의 끝이다.
이 남단은 굴곡이 몹시 심한 지형으로, 그나마 끝이 끊어져 있다. 「포르투갈」의 항해가 「마젤란」은 1520년 그 사이를 처음으로 통과, 태평양을 횡단해「필리핀」으로 갔었다. 이른바「마젤란」해협이 바로 여기다.
「마젤란」해협을 끼고 있는 섬이「푸에고」주.『불의 섬』이라는 뜻이다. 이 섬도 역시 동서로 나뉘어「아르헨티나」와「칠레」가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쪽의 주도「우스와야」(Ushuaia) 는 이 지구상세계 최남단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인구는 8천명쯤.
바다를 끼고 있는 남쪽의 섬이어서 아름다운 지상천국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우선 기후가 고르지 않다. 한여름엔 낮의 기온이 27도(섭씨)나 오르는가 하면 저녁엔 2도로 내려가「스웨터」를 끼워 입어야 한다. 아침엔 서 리가 내리기도 한다. 여름이라기보다는 초겨울과 여름이 반반인 이상기후인 것이다.
겨울은 또 겨울대로 태양을 보기 힘든다. 상오 10시까지 전등을 켜고 있어야 할만큼 햇볕이 귀하다. 게다가 바람마저 사철 사납게 분다.
이런 기후에선 땅도 불모지일 수밖에 없다. 주민들은 아예 농사는 지을 생각조차 않는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펄프」 공장에 다니고 있다.
그러나「아르헨티나」정부는 이 섬을 지정학적으로 몹시 중요시하고 있다. 한때는「칠레」와 총을 맞 쏘며 다툰 일도 있었다. 영유권 문제 때문이다.「아르헨티나」는 이곳에 해군기지를 만들어 놓고 상당수의 군대를 상주시키고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눈앞에 있는「주인 없는 대륙」남극에서 언젠가는 주인 행세를 하려는 속셈도 있다. 「칠레」는 물론, 다른 어떤 나라보다 앞서 손을 뻗으려는 것이다.
각설하고-.
이 지구의 끝, 세계의 최남단, 낯설기 그지없는 불모의 땅에 바로 우리의 동포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더구나 이들은 야채재배에 성공을 거두어 현지주민들의 선망을 받고 있다고 한다. 본사 특파원의「르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이민을 떠난 9명의 동포들이 저마다 슬기와 의지와 근면으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것이다. 이들은 비록 보 잘 것 없는 능력일망정 그것이 집념과 의지의 불에 달궈지면 실로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생활철학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 같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이들은 꿈 아닌 현실로 그것을 맞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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