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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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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쾨쾨한 냄새가 풍기는 10평남짓한 방. 칸막이가 된 20여개의 책상에는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과 머리를 대고 옆드려 잠이 든 학생이 반반이다. 난로위에는 라면끓는 소리가 방분위기에 음향효과를 이룬다.
학생들은 모두 16명.서울인사동 K독서실 일반열람석의 풍경이다.
책상위에는 학생들의 이불과 담요등이, 책장사이의 칸막이에는 내의·양말등 세탁물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열람실 입구 양쪽 선반에는 라면상자와「트렁크」가 놓여있다.
K독서실엔 이같은 방이 6개,1백10명을 수용한다. 특실이 2,일반실이 4. 특실은 좌석이 약간넓고 책장은 철제, 유리창엔 「커튼」 이 쳐있다.

<라면상자 딩굴어>
특실은 일반석보다 열람료가 1천∼2천원 비싸다.
많은 재수생들과 몇몇 고시준비생들이 이곳에서 24시간 책과 씨름한다.
일반도서관 열람실의 축소판 같으나 의자를 치우고 잠 잘수있다는 점이 도서관과 다르다. 하숙을 겸한 도서관이라고나 할까.
이같은 시설이 서울에만도 2백94개소나 된다.
독서실에도 5계가 있다. 잡담·음주·흡연·취사·취중입실등-.
그러나 라면을 끓여먹는것과 취중입실정도는 오래전부터 묵인돼오고 있다.
다만 나머지 세가지 금기사항은 철저히 지켜진다. 이를 어겼을경우 각서를쓰고 그후에도 다시 적발되면 「퇴실」 을 명령받는다. 제법 규율이 엄하다. 이같은 기강을잡는 사람은 독서실마다 2∼3명씩있는 「총무」들.
각방의 난로를 돌보고 열람접수업무를 받는다. 입시 「시즌」이 가까와 독서실의 인기가 높아지면 그만큼 총무의 권한도 강해져 얼마씩의 웃돈을 받고 접수할때도 있다.
독서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서울의 학원에 다니기위해 상경한 지방출신 재수생들이 대부분. 간혹 고시준비생이나 서울변두리지역 학생들도 끼여있다.
지방학생들은 하숙비를 줄일수있는 것은 물론 학원을 오가는시간을 절약할수 있는데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공부하는 분위기에 묻힐수 있기때문에 이곳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많은 독서실이 종로와 광화문근처 「학원가」에 몰려있다.
요즈음 서울의 하숙비는 독방6만원, 2인이상 합숙은 4만원이 넘는다. 독서실을 이용할경우 한달경비는 열람료 7천원 (특실8천∼9천원)에 2∼3백원짜리 끼니를사먹어 하숙비에 비해 한달평균 1만5천원이상 절약된다는것.
P군 (20· 대구K고출신) 은 매윌 고향에서 6만원씩 받아 쓰고있다. 물론 학윈등록금과 하숙비 그밖에 약간의 용돈인데 한달내내 책과 씨름하다보면 『몸과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한달에 한번정도 「탈선」(?)을 한다』 고 했다.

<월만5천원 절약>
P군이 말하는 「탈선」 은 몇몇재수 친구들과 생맥주 집이나 낙지집 아니면 일요일 등산. 이 경비를 떨어내기 위해 독서실을 이용했는데 공부는 하숙때보다 효과가 있는것 같다고 했다.
이때문에 독서실의 열람료는 당국의 인가요금 3천9백원의 배에가까운 7천원을 받고 있지만 항상 만원을 이룬다.
시간절약을 위해 독서실을 이용하는것은 서울이나 지방학생 모두 마찬가지. B독서실의 N군(21·충남서천 S고졸)은 처음 대방동누나집에 묵으면서 학원이끝나면 도서관대신 독서실에 들어가 공부했으나 「버스」 에 시달리는것이 귀찮아 아예 옮겨앉았다.
그러나 독서실 환경은 많은 문젯점을 지니고 있다. 환기가 제대로 안돼 항상 혼탁한데다 원래가 숙소를 겸하도륵 돼있지 않기때문에 잠자리가 불편한 것은 말할것도 없다. 잠자리라야 책상위에 쌓아놓은 이부자리나 담요를 내려 의자를 밀어낸 자리에 드러눕는것이 고작. 건강유지를 위한 숙면은 어렵다.
뿐만 아니라 탁한 공기 때문에 3개월이상 이곳에서 생활한 학생들 사이에는 호흡기 질환을 갖고있는 학생들이 많다.
그밖에 주변에는 많은 술집과 당구장등이 이들을 유혹하고….

<인가요금의 2배>
3월초 학원가의 개학에 때를맞추어 상경한 L군(19·광주K고졸)은 『열람료를 좀 더 받는 한이있어도 기숙사와 같은 형태의 독서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원 강의가 끝나면 재수생들은 방황하기가 쉽다. 그래서 어느학원은 학원교실을 밤 10시까지 개방해 도서관으로 활용할수있도록 하고있으나 이 역시 완전하지는 못하다.
숙·식에 신경을 쓰지않고 마음놓고 조용하게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실이 학원주변에 몰려있는것과 마찬가지로 독서실 주변에는 싸구려 「밥집」 과 「분식집」들이 톡톡히 재미를본다. 학원이나 독서실 학생들의 호주머니가 넉넉치 못한때문에 이같은 싸구려음식점이 늘어난것.

<주변밥집도 재미>
밥집은 일반식당에 비해 값이싸고 약간은 가정적인 분위기를 느낄수있어 인기-. 독서실이 밀집돼있는 종로의 학원가에만도 30여개의 「밥집」 이 있다. 한끼 밥값은 2백20원. 김치와 콩나물무침, 된장국이 주요 「메뉴」 . 가끔 갈치국이나 고등어 자반이 곁들인다.
인사동의 「노란대문집」은 재수생들 사이에 잘 알려진 집이다.
엉성한 시설을 갖고 운영하는 독서실주인들은 요즈음 큰 고민이 생켰다. 서울시교육위원회가 학원 「소개령」 을 내렸기 때문이다. 강남이전을 권장하고 있다.·
학원이 옮기면 덩달아 움직여야만 하는 독서실-. 강남으로 옮길만한 능력이 없어 울상을 짓고 있다 .이와함께 학원주변의 밥집주인들도 학원과 독서실이 옮겨가면 역시 타격을 받을것이라고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학원과 독서실,그리고 밥집은 공생(공생)의 관계를 지니고있다.<박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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