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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손짓대신 말할 수 있어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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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구화학교의 「농아 이야기 대회」
『여러분 안영하세어. 더는 한구구와악교 초등부 이항년 허영군입니다. 지금부더 개미와 배장이 이양이를 항엤읍니다.』(『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구화학교 초등부 이학년 허명준입니다. 지금부터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하겠읍니다.』) 21일 하오2시 한국구화(口話)학교(교장 최병문·55)강당에서 열린 「제6회전국농아 이야기대회」에 출전한 허형준군 (8) 온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서투른 발음이지만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개미와베짱이」얘기를 펼쳐나갔다.
겨울을 앞두고 열심히 양식을 모으는 개미의 부지런함과 그늘에서 노래만 부르며 앞날의 걱정을 모르는 베짱이의 어리석음을 우리들의 교훈으로 삼아야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허군외에 이 대회에 출전한 16명의 농아들도 뼈저린 훈련끝에 애써 익힌 서투른「말」로 「반성」 「교장선생님의 머리카락」 「늑대와 여왕」 「세가지 소원」 등의 주제를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아빠』 『엄마』조차 말하지 못하던 농아들이 이제는 동화 한가지정도는 이야기할 수있게 됐다.
귀에는 고성능 보청기를 꽂았고 발음은 마치 서양인이 서투르게 우리말을 하듯 어색했지만 「이제는 손짓대신 말을 할수있다」 는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말이 아직도 서투른 어린이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보면 마치 중국어를 듣는 것처럼 이해할수 없는「말」 의 연속이지만 어린연사들의 표정은 여느 어린이 못지 않게 맑고 또렷또렷했다.
한국구화학교의 올 졸업생은 모두28명. 중등부졸업생 5명가운데 4명이 고등학교에, 초등부 11명가운데 6명이 중학교에, 유치부 12명가운데 1명이국민학교에 진학한다. 대부분 농아들이 일반학생과 함께 공부하는데 지장없을정도로 말을 하게된 것이다. 이들모두가 입학할 당시에는 한마디의 말도 못하던 「벙어리」 였다. 그러나 다른 어린이들처럼 「나도 말을 하겠다」 는 농아들의 끈질긴 집념, 교사들의 정성과 사랑이 합쳐 이같은 보람을 찾게된것.
이 학교의 3회졸업생인 박창권군(19) 은 꾸준한 노력끝에 지금은 한양대건축과에 입학, 유학시험에도 통과해 미국 「유타」 주립대학의 입학허가자격도 따놓았다.
불우한 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부모와 주위사람들의 이해와 사랑. 깊은 생각없이 대하는 냉대가 이들을 증오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도 한다. 초등부 K군의 아버지는 말못하는 아들이 이웃에 부끄럽다며 함께 외출할때면 『절대로 입을벌리지말라』 고 욱박지르곤했다. K군은 선생님과의「카운슬러」 도중 『이 세상에서 아버지가 제일 밉다』 고 까지 말할 정도였다.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깨달은 아버지는 크게 뉘우치고 K군을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펴 다시 정상을 되찾기는 했지만 어느 이웃이 K군의 증오심에 다시 불지를지는 의문이다.
『농아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조기교육입니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2∼3세때 말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농아교육에 한평생을 바쳐온 최교장은 부모들의 무관심을 이같이 경고했다.
『우리도 들을수있다』 『우리도 말할수있다』 는 생각을 갖도록 주위에서 이들을 격려해주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이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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