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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국에 뭔 선거" 후보 명함 뿌리치는 주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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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안산 시민들이 22일 고잔동에서 한 시의원 후보 선거운동원들을 외면하며 길을 건너고 있다. [최승식 기자]

22일 낮 12시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 안산문화공원. 상가가 몰린 안산 중심지역이고 6·4 지방선거 운동이 시작된 첫날인데도 선거운동원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출마를 알리는 현수막 6개가 내걸렸을 뿐이다. 수도권 전철 4호선 중앙역 부근엔 운동원은 물론 현수막조차 없었다. 아파트가 밀집한 주거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선부동 아파트단지에서 7년째 야채 노점상을 하는 한순희(63·여)씨는 “유세 차량이 아침부터 빙빙 돌면서 눈치만 볼 뿐 확성기는 틀어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읍 조금리 네거리. 군청 근처 인 데다 5일장까지 열리는 날이었다. 하지만 이날 이곳에 나온 선거운동원은 4명뿐. 후보 명함을 건네도 주민들은 잘 받지 않았다. “아따, 이 판국에 무슨 선거랑가”라며 뿌리치는 주민도 있었다. 행인은 포기하고 가게를 찾아다니며 명함을 돌리는 운동원도 있었다. 한 군의원 선거운동에 나선 박정선(52·여)씨는 “2010년에는 하루에 명함을 500장 이상 돌렸는데 오늘은 오후 4시가 넘도록 50장도 채 못 건넸다”고 말했다.

 6·4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유세 차량 확성기 소리가 울려퍼졌건만 안산과 진도는 조용한 하루를 보냈다. 시민과 주민들은 만나면 선거가 아니라 세월호 얘기를 나눴다.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은 차량 방송을 하지 않은 채 명함만 돌렸다. 소리를 내지 않는, 이른바 ‘묵언(默言) 운동’이다. 새누리당 조빈주 안산시장 후보와 무소속 김철민 후보는 “마이크를 사용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고 새정치민주연합 제종길 후보는 “유세 차량을 장만하지 않았다”고 했다.

 현수막도 별로 없었다. 단원고 앞에는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라고 적힌 것 단 하나만 내걸렸다. 선거운동을 하는 것조차 자제했다. 이날 오후 6시 한 대형마트 앞에서 만난 박영규(48·안산시 고잔동)씨는 “오늘 선거운동원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단원고 앞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김인재(60)씨는 “이번 선거엔 관심이 없고 누가 나오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투표율이 75.6%에 이를 정도로 정치와 지방자치에 관심이 많은 지역인데도 이번엔 선거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졌다. 주민 김유심(69·여)씨는 “하도 조용해 선거가 연기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이동진(68) 새정치연합 진도군수 후보는 “세월호 애도 분위기를 고려해 가능한 한 조용히 선거를 치르려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전직 군수인 박연수(65·무소속) 후보는 “운동원들이 로고송을 틀거나 율동을 하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그저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시의원·군의원 선거에 나선 신인 후보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익명을 원한 진도의 군의원 첫 출마자는 “아무래도 주민에게 이미 얼굴과 이름을 알린 기존 의원들이 유리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안산=임명수 기자, 진도=최경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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