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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때 징용으로 끌려간 양칠성씨 여동생, 33년만에 오빠소식 들어 체포돼 총살… 전우인니인 추천으로 영웅추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인도네시아」에서 「독립의 영웅」으로 추앙을 받고있는 외국인 세병사-.
「인도녜시아」국립묘지에 잠들고 있는 이 세병사는 모두 일본인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그중 1명이 일제때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최근 어느 일본여인의 숨은 노력으로 밝혀져 한국에 있는 누이동생은 이역만리 남양땅에서 숨진 오빠소식을 종전33년만에 알수있게 됐다.
이같은 사실을 밝혀낸 일본여인은 「일본조선작구소」에 관계하고 있는「우쓰미·아이꼬」(내해애자·37) 씨.
지난18일 동경에서 「우쓰미」씨는 재일동포 최장환씨(56·동경도삽곡구)를 만나 「인도네시아」에서 「독립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세병사 중 한사람이 최씨의 친척으로 징용에 끌려갔던 양칠성씨임을 전해주었다.
최씨는 처음듣는 이야기여서 어안이 벙벙했으나 「우쓰미」씨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화제의 영웅 중 한사람이 자기 고모부 형의 아들임이 틀림없음을 확인하게 되었고 이소식은 곧 전주·(중앙동1가 8의9)에 살고 있는 양씨의 누이동생 양남수씨에게 전달됐다.
「우쓰미」씨의 설명에 따르면 화제의 실마리는 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6년 8월17일 제31회 「인도네시아」독립기념일을 전후하여 「우쓰미」씨는 서「자바」 를 여행했을때 서「자바」주의 수도 「반도완」 남쪽 40㎞ 떨어진 온천휴양지「가루도」마을 근처 산기슭에 자리잡은 「독립영웅묘지」를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이묘지는 지난45년 일본패전을 틈타 「인도네시아」를 재침략하려던「네덜란드」군과 싸우다 숨진 독립전사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서「자바」에서「네덜란드」군을 맞아 「게릴라」전으로 대항하다 「네덜란드」군에 체포되어 총살당한 이국의 병사들도 여기에 묻혔다.
「우쓰미」씨는 이 묘지를 둘러보면서 징용 당하여 남양전쟁터에 파견된 한국인들이 종전후「인드네시아」독립전쟁에서 활약이 컸다는 기록을 읽은 일이 있어 한국인 병사들과 결혼, 사별한「인도네시아」여인들을 찾아나섰다. 「우쓰미」씨는 일본패전때까지 서「자바」에서 포로수용소 감시원이었던 군속신분의 한국인과 결혼했던 2명의「인도네시아」여인을 만나는데 성공했다.
이미 50대가 된 이들 「인드네시아」여인들은 남편의 한국이름 조차도 잊고 있었으나 재혼을 않은채 혼자살면서 기억을 더듬어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것.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남편들은「네덜란드」군을 맞아 「게릴라」전으로 대항하다 숨졌고 「네덜란드」군은 남편의 편지·사진·한국가족과 주고 받은 편지등을 모두 불살라버렸다는것.
이 여인들은 「독립영웅묘지」에 묻힌 1명이 한국인으로 알고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우쓰미」씨는 백방으로 수소문 끝에 일본인 이름「야나가와·시찌세이」(양천칠성), 「인도네시아」이름「코마루딘」으로 묻혀있는 장본인이 한국 전라북도 출신 양칠성씨임을 확인할수 있게 되었다.
재혼했으나 양씨의 부인이 아직 살아있고 양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이미 20대 청년이 되어있었다.
자료에 의하면 「게릴라」지휘자격이었던 양씨는 48년11월 서「자바」밀림에서 다른2명의 일본인병사와 함께 「네덜란드」군에 체포되어 49년 8월 10일 총살당했다.
그로부터 27년후인 76년「인도네시아」정부는 양씨와 함께 「게릴라」전우였던 「인도네시아」인의 강력한 추천으로 양씨와 전일본인병사 2명을「독립의 영웅」으로 추서케 된것이다. 최근 「우쓰미」씨의 기행문이 나옴으로써 결국 양씨의 여동생이 뒤늦게 나마 오빠소식을 알수있게 되었는데 기행문에서「우쓰미」씨는 양씨가 한국인이라는것을 알고 있는 일본정부가 일본인처럼 계속 놓아두었던 점이 무엇인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동경∥김경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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