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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공산권의 분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베트남」과「캄보디아」의 무력 충돌은 직접 협상의 돌파구나 중재 협상의 통로가 다같이 두절된 채, 당·국가·「이데올로기」·국제관계의 모든 측면에서 적과 적으로서의 타협 없는 대결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어떤 극적인 전기가 찾아들지 않는 한 이와 같은 총체적 적대 관계의 조속한 해소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으며, 이와 병행해서「아시아」공산권내부의 다극화 현상도 더 한층 현저해 질 전망이다.
공산권의 다극화 추세나 이념적·국가적 분열 항쟁이란 물론 어제오늘 있었던 현상만은 아니나, 그래도「아시아」의 제 공산 집단만은 비교적 동질성과 연대를 유지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그 예외적인「신화」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동「아시아」공산집단 내부에도 이념적·국가적 분열항쟁의 시대가 찾아든 셈이며, 이에 따라 이 지역 일대의 국제관계도「공산 대 비공산」의 이원론에서 보다 복잡 다양한 이합 집산으로 확산될 공산이 크다.
이념적 측면에서 볼 때 양측간의 충돌은「베트남」의 정통 공업화이론과「캄보디아」의 폐쇄적 농촌「코뮌」이론사이의 대립이라 부를 수 있겠다. 「베트남」의 이론「모델」이 소련형에 가깝다면「캄보디아」의 그것은 변종 모택동 주의에다 배외주의를 혼합시킨 것으로 이 양자간의 거리는 중·소 대립만큼이나 멀고도 깊어질 것 같다.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측면이란 양자간의 오랜 역사적 반목, 특히「베트남」인들의「대국주의」에 대한「캄보디아」인들의 뿌리깊은 경계심과 혐오감을 말하는 것이다. 이 민족적인 상호 갈등은 과거「프랑스」식민 당국에 의해 적절히 이용되었던 것이 사실이고, 그때의 임의적인 국경선 책정과 월남전 당시의「호지명·루트」가 오늘의 분규를 불러온 원수의 하나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점은 적화이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크메르·루지」내부에는 친「하노이」파와 반「하노이」파의 반목과 숙청극이 잇달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 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사태는 여간 복잡하고 유동적인 것이 아니다.「하노이」는 지난해 여름부터 지금까지의 대「아세안」강경 자세를 지양하고「필리핀」「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등과 더불어 전격적인 관계 개선과 우호 관계 수립을 추진하더니「캄보디아」침공을 전후해서는 태국과의 항공·무역·상업·기술협력의 4개 협정을 일거에 조인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캄보디아」가「베트남」·태국의 중간에 끼어 고립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아세안」일대에서 중공세가 월맹세에 밀리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대항수단으로「캄보디아」와 중공은「폴·포트」의 북경방문을 계기로 급속히 밀착되는 기미를 보였으며, 이 북경-「프놈펜」주축엔「버마」와 북괴가 뒤따라 가세하는 듯한 정세가 나타났던 것이다.
결국 동「아시아」대륙 일대엔 소련·「베트남」·「라오스」·태국의 연결 체계와 중공·「캄보디아」·「버마」·북괴의 연합세력이 대립하는 형국이 조성되어, 이념적인 다양화와 실리적인 합종연형이 동시에 심화되는 듯한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이 복잡한 분열 항쟁의 상황하에서 북괴는 이념적으로「캄보디아」·「버마」등 중공계열에 가담하면서도 국제적 고립을 회피할 속셈에서「베트남」·소련에 대해서도 두드러진 반대 의사를 노출시키진 못할 것 같다.
이것은 곧 이념적·국가적 다극화시대에 있어서의 북괴 교조주의와 폐쇄주의의「딜레머」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아시아」외교의 보다 다양한 정책전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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