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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약사들 "신약이 오히려 발목잡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 중견 A제약사는 자체 개발한 신약 때문에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다. 신약후보물질을 이전받아 임상연구 끝에 국산 신약 개발은 성공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낮은 약값을 책정받았다. 그래도 좋은 약이고, 한국사람에게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생각에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특허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약값이 인하되면서 투자 원금회수도 어려운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도 쉽지 않다. 워낙 한국에서 약값을 낮게 받아서다. 한국에서 처음 받은 약값을 기준으로 이들 지역에서도 약값을 산정하다보니 제대로 가치를 쳐주지 않았다.

▶매출 없는 국산신약 이유 살펴보니

국내 제약업계가 신약개발 딜레마에 빠졌다. 어렵게 신약을 개발해도 투자 성공은 커녕 개발원가도 찾기 힘들어서다.

한국제약협회는 최근 정책보고서 KPMA 브리프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국내 제약회사가 지금까지 개발한 신약은 무려 20개다. 하지만 이중 연 매출 100억원 이상 올리는 '대박' 신약은 고혈압치료제 카나브(보령제약)과 발기부전 치료제 자이데나(동아ST) 두 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국산 신약은 수십억 대 판매 실적을 올리는데 그쳤다. 일부는 매출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

2010년 허가를 받은 첫 국산 고혈압치료제인 카나브는 지난해 209억원, 2005년 개발된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는 117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국산 신약 1호인 SK제약의 항암제 선플라가 1999년 등장한 이후 가장 최근 신약 대열에 합류한 종근당의 당뇨병치료제 듀비에까지 국산 신약의 목록이 모두 20개로 늘었지만 대부분 수십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친 것이다.

그나마 비교적 선전하고 있는 품목은 2007년 나온 SK케미칼의 엠빅스와 필름형인 엠빅스에스는 각각 13억원, 7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외에도 일양약품의 항궤양제 놀텍과 LG생명과학의 당뇨병치료제 제미글로는 각각 58억원, 5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제약협회 공정약가정책팀 이상은 선임연구원은 "신약개발은 고위험 고수익을 특징으로 한다"며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특허를 보유해 고수익을 올려 신약개발 R&D투자비를 회수하고 재투자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결국 신약 판매가 저조하다면 R&D 비용을 회수해 새로운 신약 개발에 재투자 하거나 개발 신약에 추가로 투자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잇따른 약값인하에 신약개발 의지 '뚝'

신약개발 투자비 회수가 힘든 원인은 바로 약값이다. 이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제약회사가 생각하는 적정 약값을 받는 것도 어렵지만 특허기간 중에도 이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신약의 보험약값 등제는 대체 가능한 의약품의 약값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문제는 건강보험에 새로 진입하는 신약의 기준 약값역할을 하는 대체 약제 가격이 재평가 사업이나 특허만료로 약값이 지속적으로 인하하면서 생긴다.

종근당의 당뇨병치료 신약듀비에가 대표적이다. 실제 듀비에는 대체약제인 액토스가 53.55% 일괄인하되면서 덩달아 약값이 깎였다. 여기에 듀비에 복제약이 앞으로 시장에 출시되면 현재 가격의 53.55%가 또 인하된다. 처음 책정했던 약값의 25%수준으로 뚝 떨어지는 것. 제약업계에서 신약의 가치를 지나치가 저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지속적인 약값인하 정책으로 국산개발 신약이 복제약보다 약값을 낮게 받는 사례도 있다.

개발원가를 약값에 반영할 수 없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원가반영 항목이 제한적인데다가 그렇게 산출한 원가를 약값에 그대로 반영하지 않아서다. 본래 신약은 수많은 실패를 딛고 이뤄진다. 물론 이는 제약사가 감당해야할 부분이지만 신약개발 원가에는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이 선임연구원은 "개발원가 반영이라는 본래 취지가 사라져 국산신약이 해외에서 수입한 도입신약에 역차별을 받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용량과 약값을 연계해 약값을 인하는 '사용량-약가 연동제'도 논란이다. 이 제도는 의약품 사용량이 예상보다 더 많이 팔리면 약값을 인하하는 약가제도다. 약가인하 대상은 처방실적이 전년보다 10%이상 증가하거나 처방금액이 50억 이상 늘었을 때다. 약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약값인하 폭이 커진다.

일반적으로 약은 출시 초기에 판매량이 늘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판매 수준이 일정해진다. 신약은 출시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큰 폭으로 매출이 늘어난다. 출시 초기에는 어떤 환자가 적합한지 테스트 성격으로 사용하다가 약효가 좋다고 판단하면 여러 환자에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단기간에 약 사용량이 크게 늘어난다. 다시 말해 매년 약값이 인하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B제약사 관계자는 "이래서 깍고 저래서 인하한다"며 "힘들게 신약을 개발해도 애물단지가 된 제품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 제도를 강화하자 제약업계의 반발은 상당했다. 신약을 주로 판매하는 다국적제약사들이 모인 다국적의약산업협회는 "새 약가제도를 적용하면 연 매출 100~500억원 규모의 의약품은 매년 사용량 약가 연동제를 적용받는다"며 "제약산업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국산신약도 마찬가지다. 동아에스티에서 두번째로 개발한 천연물신약 모티리톤이 그 예다. 이 약은 보험급여 등재 당시 기등재 목록정비로 20%가 약값이 인하됐다. 그런데 1년 후 사용량이 예상 사용량 대비 30%이상 늘어 사용량-약값 연동제 협상 대상이 됐다. 동아에스티 측에서는 개발원가를 감안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선임연구원은 "이중 약가인하로 국산 개발신약 가치를 떨어뜨리고 R&D 투자비 회수와 추가 임상에 필요한 R&D 투자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잇따른 약값인하는 새로운 임상데이터를 개발하기 힘들게 하면서 해외 진출도 막는다. 그는 "개발원가를 고려해 최소 5년간은 사용량-약값 연동제 적용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약업계 "보험등재 제도 개선해야"

신약개발을 활성화하는 대안은 없을까. 제약업계에서는 직접 신약개발을 지원하기 보다는 국산 개발신약 R&D 투자비와 개발원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보험등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약값에 혁신가치를 반영하지 않으면 결국 신약개발에 대한 동기부여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제약회사는 약값으로 정당하게 이익을 회수하고 이를 신약에 재투자해 자체 개발한 신약의 우수성을 높인다. 공격적으로 해외시장 진출도 계획할 수 있다. 이상은 선임 연구원은 "한국이 세계 10대 제약강국으로 도약하려면 합리적인 약가 등재를 통해 R&D 투자비와 개발원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신약 보험등재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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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기자 byjun3005@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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