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할아버지 노유상 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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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느 결에 별명이 『연 할아버지』가 됐다. 내가 지나가면 아이들이 즐겁게 그렇게 부르고 또 내 집은 마을에서 『연 할아버지네』로 통한다. 누추한 집이지만 많은 손님이 찾아온 다. 때때로 외국 손님도 온다.
요즘에는 그들의 주문만 다 만들어 주자해도 일손이 달린다. 연간 5백개는 실히 만드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업처럼 돼버렸다.
세시풍속으로는 음력 정월대보름까지 연을 날리 것으로 돼 있지만 내 경우는 마당이나 냇둑에서 1년내내 날린다. 연줄을 쥐고 있으면 만사가 편안하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어릴 때 연 날리던 기억이 새롭겠지만 연 속의 동심은 사람을 늙지 않게 하는 신통한 힘이 있는 것 같다. 땅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는 소망의 승화라 할까.
2∼3㎞하늘 높이 연을 띄워놓고 그 창공 가운데를 상하좌우 자유자재로 내닫는 장쾌함과 정복감은 연을 날려보지 않고는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머리가 무거운 일이 있어도 연줄을 잡으면 그렇게 상쾌해 질 수가 없다.
군에 있을 때도 틈나는 대로 아무데서나 연을 날렸다. 그때 신문로(서울)에 살고 있었는데 아마 남의 눈에 유난스러웠던 것 같다. 1955년 이 대통령의 권고로 서울시가 첫 연날리기 대회를 실시하며 나를 찾아와 개최요령과 경기방법 등을 거의 일임하다시피 했다. 제대 후에는 더욱 그것이 소일거리가 됐다.
계절적으로 봄과 여름이 부적격한 것은 바람 때문이다. 하늘에 오르면 여름기류는 난잡하고 또 연에는 초속 3∼10㎞가 호적한데 그만 바람이 멎는다든가 하기 때문에 대개 10월께부터 연을 날리게 되는 것이다.
세계 각지방에 연이 다 있지만 한국의 방패연만큼 바람에 민감한 게 없다. 그건 복판의 방구멍 때문이며 상승과 후퇴, 그리고 거꾸로 곤두박질치는 태김질 등 한국 연만이 가진 독특한 기능이다.
연의 전통은 통영과 동래가 센 편인데 최근엔 서울의 각급 학교에서도 특별활동 삼아 연 만들기와 날리기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취미로 혼자 즐길 겨를이 점점 없어지는 대신 동호인이 많아지는 즐거움이 있다.

<약력>▲74세. 황해도 장연태생 ▲서울 오성중학졸업 ▲보병장교로 입대, 중령제대 ▲현주소 서울 연희동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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