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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술|박세원 교수에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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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8년의 미술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지난해 한층 팽배했던 상업주의가 금년엔 새로운 전환점을 찾아 반성하고 예술본연의 자세를 정립해야 한다는데 있다.
최근 서울대 미대 학장으로 취임한 동양화가 박세원 교수는 어수선하고 무분별했던 지난 수년간에 비춰 금년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전시회는 양적으로 늘었지만 전시장을 나올 때면 항상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사실 최근들어 그림들이 화려해지고 세련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깊이가 없군요. 작가적 양심을 되찾아야 하고 손끝재주를 지양해 무게 있고 정성이 담긴 작품이 나와야 할때가 됐습니다. 이건 화랑이나 화가·애호가가 모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입니다.
박 학장의 이런 우려는 산업혁명후의 영국이나 수년전 일본의 미술계를 생각나게 한다.
갑자기 산업구조와 사회계층이 바뀌면서 신흥갑부와 농촌부자들에 의해 그림이 날개돋친 듯 팔렸으며 그 값은 실정에 맞지 않게 뛰었다. 이런 현상은 곧 그림 값의 폭락을 가져왔으며 침체기를 벗어나는데 오랜 기간 허덕이게 했다는 것.
우리나라의 경우 동양화 부문에서 특히 타성에 젖어있는 것 같다고 박 학장은 말한다. 그러나 지난해 40대 작가들에 의해 시도됐던 사경풍조는 어느 정도 동양화단의 돌파구가 되고 있는 게 아닐까.
『획기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좀 더 오랜 시간 현장에 머무르면서 속사의 수련을 거쳐 그 무리한 점을 「커버」한다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올해에는 더욱 많은 작가들이 참신한 실험과 모색에 눈을 돌러줬으면 하는 기대다.
동양화단의 세대교체와 함께 서양화 부문에서도 역시 새로운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특히 실험적인 신진작가들의 활동이 주목되어야 하지 않을까.
현대미술이란 개념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20년이 됐다는 사실을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곳곳에서 발전적인 조짐을 엿볼 수 있다.
젊은층에서 호응을 얻는 큰 전시회가 서울과 대구·춘천 등 지방으로 확대됐고 지난해 쉬었던 부산에서도 올해는 본격적인 규모의 현대미술제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양적인 팽창이 곧 질적인 발전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미술에서도 절실하게 느껴진다.
각 지방 예술제마다 작품을 내는 사람은 정해져 있을 뿐 아니라 전시장마다 개성 없는 획일적인 작품이 벽을 메우는 실정.
『개인적 탐구정신이 부족한 것이 요즘 현대작가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쌓아올린 업적을 모방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런 단계를 극복해 자기 것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창작활동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지요.』
박 학장은 또 일부 신문사에서 민전을 계획하고 있는 점에 큰 관심을 표명한다.
국전 개혁론이 끊임없이 대두되고 몇 차례의 탈바꿈을 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걷고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로 미술계나 애호가들이 민전에 거는 기대는 대단한 것.
『작가들이 선의의 야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기치아래 열린다해도 성공을 못해요. 작품을 통해서 실력을 겨루는 광장이라는 의식을 갖고 순수한 「라이벌」의식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작은 모임이라도 자주 열리면 관심도 높아지고 참여의식이 고조되며 중흥을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임을 박 교수는 강조한다. <이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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