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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본 삼국사 알맹이 단양의 진흥왕 순수비|발견경위와 내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신라 진흥왕순수비의 일환인 단양 적성비는 일찌기 흙 속에 묻혀 자취를 감췄던 역사적 기념물. 모든 순수비 자체가 역사 기록 속에 건립 사실이 기재된바 없지만 기존 창녕·북한산·황초령·마운령 것은 일찍부터 사람의 눈에 띄어 중요성을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단양 것은 사기에는 물론, 주민들조차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단양시내 뒷산에 해당하는 산성은 해발 3백m 남짓해 시민들의 조기회 산책「코스」. 최근까지 몇 대학에서 답사했지만 예외 없이 지나쳤다. 그런데 이번 단국대의 단양지구 유적조사단(단장 정영호 박물관장)은 이 성을 온달성이라 일컫는 주민의 구전에 착안, 산성 안에서 명문 있는 기왓장을 찾다가 뜻밖에 글씨가 쓰인 판석의 한끝을 잡아 신라사의 귀중한 한 「페이지」를 얻은 것이다.
글씨는 천각이어서 그냥 판독되지 않았으며 먹물로 척본해 비로소 선명하게 떠올랐다. 빗들이 적어도 3조각으로 깨지긴 했지만 비면은 별로 긁힌 자국조차 없어 글자가 또렷한 편. 고졸한 해서체와 아주 낯선 고자만 보아도 능히 아득한 옛 비석임을 분간할 수 있다.
정영호 박사는 처음에는 이 뜻밖의 소득을 의심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삼국시대의 비석이란 너무도 희귀한 것일뿐더러 날마다 무수한 사람의 발길에 차이는 장소에서 남아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비석은 진흙 속에 얕게 넘어져 묻혀 있었다. 둥그런 판석으로 지름이 1m남짓하다.
비석 윗부분의 없어진 조각까지 추산한다면 비 전문은 4백50자. 그 중 현재 수습된 글자는 2백82자이다. 글자는 가로 세로 줄을 맞춰 또박또박 써서 21자씩 22행이며 글자 크기는 2.5㎝.
여기 세번이나 거듭 반복돼 나오는 「적성」이란 글자는 바로 산성의 이름이다.
이 성의 이름은 단지 『여지승람』에 단양고을의 가장 오랜 명칭으로 나올 뿐이다. 적성은 본시 고구려 영토 때의 명칭이지만 통일신라 후에도 그대로 썼고 고려왕조 때 단산이라 개칭했다. 말하자면 적성이란 명칭의 연유가 이번에 확인된 셈이다.
이 적성비의 글은 대개 3토막의 내용으로 구분된다. 그 때 이 성에 관련된 9명의 직위에 관한 부분과 적성 공략과 통치에 공헌한 주민들에 대한 포상, 그리고 이 비석의 건립에 있어 서인·석서입인 등 관련인물을 밝혀놓은 것이다.
서울 벼슬아치의 인명 밑에는 반드시 「지」자를 붙였고 그들의 관등 밑에는 으례 「지」자를 토처럼 달았다. 지와 지는「님」과 같은 존칭인데 지방인명에는 엄격하게 그것이 없다. 여기 나오는 관등으로는 이간(2등) 피진간(4등) 대아간(5등) 아간(6등) 급간(9등) 대사(12등)대오(15등) 찬간(지방관등5등) 하간(〃 7등) 아척(〃 11등)등이고 직명으로는 대중등·??문촌당주(당주는 군사상의 부대장) 물사벌성당주 등 종래 보지 못하던 것이 보인다.
신라사회에서는 그들의 출신성분을 매우 주목하는 편인데 곧 탁부의 이사부라든가 사탁부의 무력 등이 그것이다.
이 비석의 연대부분은 파멸돼 있기 때문에, 이사부와 무력의 인명이 그 절대 연대를 추정하는데 결정적인 열쇠 구실을 하고 있다. 모두 진흥왕 당시의 주요 인물로서 무력은 특히 김유신의 할아버지.
그가 광주와 북한산지역 군주로 있을 때 아간 벼슬에 올랐었는데 그가 사탁부 출신인 점은 이번 비문에 의해 밝혀졌다.
비문은 일부 비편의 결실로 말미암아 문장이 끊긴데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고자 투성이여서 글 뜻을 바르게 해명하는데는 적잖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분적인 글귀에서나마 율령제도의 반포에 따라 연령으로 인구를 파악하는 장적이 실시돼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새 영토의 주민을 회유하고 통치하는 구체적 방법을 알게 되었다.
진흥왕은 16년(555년) 10월에 최북방 국경인 북한산을 순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새로 얻은 영토의 주민들에 대하여 은전을 베풀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이 비석이 단순한 산성비가 아니라 왕의 새 영토 순수행사와 연관되는 점은 그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진흥왕16년을 전후하여 세워진 순수비의 성격을 띤 것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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