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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어린이가 함께 읽는 동화 "울긴 왜 우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미혜와 선영이는 단짝친구입니다. 키도 비슷하고 생김새도 비슷합니다. 둘다 머리를 땋고 다닙니다. 집도 한동네에 같이 삽니다. 학교 갈때도, 학교에서 집에 올때도 늘 같이 다닙니다.
두 아이가 정답게 손잡고 걸어같 때면 사람들이 묻습니다.
『아이 어쩌면 둘다 예쁘게 생겼을까. 쌍동이인 모양이로구나. 누가 언니니.』『얘 가요.』
미혜가 선영이를 가리킵니다.
『아냐요. 얘가 언니예요.』
선영이가 미혜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아무도 언니는 아니지요. 두사람은 똑같이는 생겼지만 자매는 아니니까요. 더더구나 쌍동이는 천만에 말씀이예요.
둘은 늘 같이 다니지요. 그러니까 두사람은 바늘가는데 실 가는대로 늘 짝지어 다닙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미혜는 선영이를, 선영이는 미혜를 속속들이 모두다 알고 있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따로따로 하는 것은 꼭 하나 있어요.
그것은 공부예요.
공부할 때면 몰래몰래 한답니다. 왜냐하면 미혜와 선영이는 둘다 공부를 잘해서 한번은 미혜가 일등을 하면 선영이가 다음엔 일등을 하거든요. 공부에는 양보하는 법이 없답니다.
그런데 둘다 국민학교 5학년이 되고 나서 갑자기 둘사이가 서먹서먹해졌답니다.
같은 반이 되어서 5학년이 되자마자 반장선거가 있었습니다.
미혜와 선영이는 둘다 나란히 반장에 입후보하게 되었거든요. 친구들이 손들고 일어나서 말했답니다.
『나는 우리반 반장으로 미혜를 추천합니다. 미혜는 책임감이 강하고 무슨 일이든 자진해서 먼저하는 착한 어린이입니다.』
그러자 또 한 친구가 얘기했답니다. 『나는 선영이를 추천해요. 선영이는 소리가 제일 크거든요. 그래서 반장으로 제일 적당한 어린이입니다.』그래서 두사람은 하나뿐인 반장자리를 두고 싸우기 시작했어요. 단 두사람인 반장후보자들은 아이들앞에 나와서 얘기했답니다.먼저 미혜가 나섰어요.
『저는 부족한 사람이예요. 저보다는 선영이를 반장으로 뽑아주세요.』
그러자 선영이도 얘기했답니다.
『아니예요. 미혜가 훨씬 홀륭한 반장감입니다. 저보다 미혜를 뽑아주세요.』
점심시간이 지난후 반장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한사람씩 투표지에 이름을 쓰고 투표함에 넣었습니다.
미혜는 투표지에 누구 이름을 쓸까망설였습니다. 솔직하게 남이 안보니까 그 투표지에 자기이름을 써넣고 싶었답니다. 미혜는 반장을 하고 싶었으며 곁으로는 아닌 체했지만 반장으로 당선되면 아빠에게 졸라 새가방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것은 선영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은 나보다도 미혜가 더 나은 반장감이라고 얘기는 했지만 막상 투표지를 보니 슬쩍 자신의 이름을 써넣어버리고 싶었답니다. 반장으로 당선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엄마는 아마도 예쁜 머리리본을 사주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미혜는 투표지에다 선영이의 이름을 썼습니다.
선영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망설이긴 했지만 투표지에다 미혜의 이름을 썼답니다.
그렇게 해서 투표가 끝났습니다. 선생님은 투표함에서 한장씩 꺼내 칠판에다 바를 정(正)자로 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조미혜 한표.』『강선영 한표.』교실은 물을 뿌린듯이 조용했습니다. 놀랍게도 미혜가 한표를 얻으면 선영이도 한표를 얻었답니다. 육십일명 어린이들이 모두 투표에 참가했으니까 투표지는 자연히 예순한강이 되겠지요. 그런데 야단났습니다.
마지막 한장이 남았는데 그만 두사람은 삼십표씩 동점이였습니다. 칠판에는 두사람 다 바를 정자가 6개씩 나란히 이름밑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제 한표로써 누가반장이 되는가 결정될 판입니다.
반아이들은 침을 꼴깍꼴깍 삼켰고 선샘님의 손은 떨렸습니다.
미혜는 겉으로야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손에 땀이 났구요. 선영이는 볼이 확확 달아올랐답니다.
마침내 마지막 표한장이 필쳐졌습니다.
『조미혜.』
선생님은 떨리는목소리로 투표지를 읽었습니다.
아아. 미혜가 반장이 된 것입니다. 만 한표차로 반장이 된 것입니다.
와아-아이틀이 박수를 쳤습니다. 선영이도 박수를 쳤습니다. 5학년2반반장은 조미혜가 되었습니다.
『조미혜 앞으로 나와라.』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미혜는 교단으로 나가 섰습니다.
『앞으로 우리반 반장은 조미혜다. 박수를 쳐라.』
짝짝짝 박수를 쳤습니다.
그 날 오후 미혜는 청소당번인 선영이가 청소를 끝낼 때까지 운동장에서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두사람의 약속이었습니다.
미혜가 청소당번에 걸리면 선영이가 기다렸고 선영이가 청소당번이면 미혜가 기다립니다. 기다렸다 같이 집으로 갑니다.
운동강구석에는 지난 겨울내린 눈이 아직 쌓여있습니다. 봄이라고 하나 바람은 맵습니다. 쌩쌩 불어옵니다. 미혜는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며 기다립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청소가 끝났을텐데도 선영이는 나오지 않습니다. 운동장에는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드 이상해서 미혜는 교실로 다시 들어가 봤습니다. 교실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청소를 끝내고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선영이는 왜 미혜가 운동장에서 기다리는 것을 알고 있었을텐데도 혼자 집으로 가버렸을까요.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미혜는 혼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미혜는 선영이의 집에 들렀습니다. 초인종을 누르니 선영이가 나왔습니다.
『왜 혼자 왔니. 난 널 기다렸는데』『흥.』
선영이가 입을 삐쭉거렸습니다『잘난체 하지마라 얘, 흥.』
『더 화학났구나』
『내가 화나, 미쳤니·내가 화나게,』『난 지금껏 널 기다렸어.』
『넌 나쁜 계집애야.』
선영이는 눈을 흘겼습니다.
『난 네가 그럴 줄 몰랐다, 예. 난 투표지에 네 이름을 썼어. 그런데 미혜 너는 투표지에 네 이름을 썼지. 자기이름을 투표기에 쓰는 애가 어디있니. 그래서 넌 이졌어. 한표차로 이긴거야. 난 그런 애하고 친구가 될 수 없어.너와 난 이제부터 친구가 아니아』
야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미혜가 투표지에 선영이의 이름을 쓴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아니 그것보다 이 정다왔던 친구의 돌아선 마음을 어떻게 바로 잡을 수가 있을까요.
대문이 덜컹 닫혔습니다.
미혜는 혼자서 집으르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어이..반장.』『에.』
미혜는 대답했습니다. 『구령을 붙여야지』『차렷.』
『왜 소리가 그렇게 작아. 좀더 크게』『차렷.』
『더 크게.』『‥‥차렷.』
『안되겠다.차렷.경레.이렇게 크게 해봐라. 자, 기운내서.』
『‥‥‥‥● 』
미혜는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눈물이 흘러 내렸으니까요. 교실은 조용해졌습니다. 훌쩍훌쩍 우는 미혜의 울음소리만 컸습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미혜가 왜 우는지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날 저녁 미혜가 청소당번을 끝내고 홀로 운동장으로 나오니, 운동장 철봉대 밑에서 선영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청소 다 했니.』
선영이가 활짝 웃으며 물었습니다
『이 바보야. 울긴 왜 우니』
아주 다정스레 선영이가 따스한 손을 내밀며 팔짱을 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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