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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가 불우를 돕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언니』하고 반기며 중학생의 품에 안기는 5살짜리 어린이의 걸음걸이가 아주 서투르다.
서울종로구두정동산1시립아동 병원 불구아동병실-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효성둥등학윈(교장 원일자신부·미국인·서울마포구망원동454의6)남녀 학생 30여명이 돌아가면서 찾아와 50여명의 뇌성마비·지체불구아동 정신박약 증세의 어린이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이곳을 찾는 학생들도 정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야학을 해야 한다는 열동감에 젖어한때 좌절까지 했던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는 청소년들.
그러나 이들은 오늘의 역경을 딛고 자신들보다 더 불우한 불구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펴고 있는 것이다.
부모에게서마저 버림받고 사랑에 굶주린 아동병원의 불구어린이들에게는 언니·누나·오빠가 찾아주는 매주목요일이 이 때문에 더없이 즐거운 날이 된다. 지난29일 상오10시 77년의 마지막 방문이 되는 날 언니·누나·오빠들이 과자·사탕·장난감등 선물을 안고 찾아와 전에 없이 즐거운 하루였다.
정상적인 어린이들보다 비록 뒤떨어지는 지능을 지녔거나 몸이 불편해도 아직 이들은 천진난만한 웃음을 잃지않고 있다.
이때문에 이곳을 찾는학생들은 돌아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했다.
한 학생은 지체불구어린이에게 걸음마를, 또 한학생은 한 주동안 못나누였던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학생은 노래를 가르치거나 쉬운 동화책을 읽어 주는등 이들과 함께 놀아주다보면 병실안은 어느덧 웃음 꽃이 활짝피게 마련이다.
지체불구아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박영왕양(l6·3년)은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이 곳을 찾았지만 막상 이들을 대하고보니 도와주고 싶은 생각에 매주 찾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불구어린이들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지난6월 종교반 지도교사유창보군 (24·서울대약대4년)과 홍원석군(24·서강대상대4년)이 종교반 봉사활동으로 불구어린이들을 돕자며 시립아동병원을 찾은 것이 계기가 됐다.
2년전부터 불구아들의 보모를 맡고 있는 방인신씨(28)는 『보모들이 미처 손이 모자라 개개인에게 인격적으로 대해주지 못하는 점을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와 격의없이 놀아주어 정과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낮12시가 되어 학생들이 돌아갈 시간이 되자 불구어린이들은 저마다 제일 좋아하는 언니·누나·오빠에게 매달려 『다음주에 꼭 와요』 하며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최주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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