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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 외면·기능에 치중한 해|원자력발전 개시·간염「백신」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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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원자력시대의 문을 연 77년의 한국과학기술계는 또한 기능의 저력을 빛 보인 한해였다. 그러나 기초과학 분야는 여전히 외면을 받은 채 이렇다 할 성과하나 거두지 못한 해이기도 하다. 따라서 첨단과 낙후의 「갭」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역시 금년의 백미는 국제기능 「올림픽」대회에서의 첫 종합1위. 선반 직종의 김을곤군(20·기아산업)을 비롯해 모두 21명이 「메달」을 획득, 서독·일본을 제쳤던 것이다. 기능한국의 저력이 온 세계에 유감없이 발휘됐고 그 결과 기능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기도 했다. 기능인 우대정책이 마련됐고 기능의 정예화를 위한 창원기능대학도 때마침 설립되었던 것이다.
대학의 연구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과학재단의 발족도 과학기술의 기반구축이라는 정부의 기본시책에 발맞춘 업적의 하나. 하지만 첫해부터 지급하기로 했던 연구비를 한푼도 집행하지 않아 기대에 부풀었던 교수들의 빈축을 사고 말았다.
기술용역의 육성, 기술도입의 촉진, 기술개발의 향상 등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위한 일련의 작업이 이뤄진 것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홍릉 연구단지의 연구활동은 그렇게 두드러진 것은 없었으나 이봉진 박사의 「컴퓨터」 공작기계 개발, 차종희 박사의 고리·월성 원자력발전소 예비안전성 분석연구 등이 이채로 왔다. 또 KIST의 연구계약고가 지난 24일로 50억원을 돌파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1년만에 과거 10년 간 이룬 실적의 3분의 1을 달성했다는 것은 그만큼 기술개발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다는 증좌로 풀이되는 것이다.
과학원에서도 전문석사 과정과 용역기술사 과정을 신설, 고급두뇌 양성과 더불어 현장의 전문기술자를 키우는 특수대학원으로서 기반을 굳힌 해.
원자력 분야에서는 고리발전소의 준공과 함께 각종원자력관계 국제회의가 잇달아 열렸고 원자력발전설계 「엔지니어링」 전문용역 업체인 KNE의 발족도원자력기술의 자립화의 일환.
금년에 해외에서 유치한 과학자는 모두 51명, 특히 매년 20명 정도이던 영구유치 과학자가 올해는 서진범 박사·임호빈 박사·이영환 박사 등 32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KIST와 과학원의 유치 과학자의 유출현상도 두드러졌다. 예년의 2배 이상 늘어난 유출 「붐」은 누적된 대우에 대한 불만의 결과로서 그 대책이 촉구되고 있다.
또 과학원에서의 일부 교수간의 마찰과 일련의 사고는 과학원의 비대화와 학생지도의 부재가 빚은 오점으로 기록되었다. 생명과학 분야를 서자 취급, 시대 조류에 역행한 원자력연구소의 처사도 많은 기초과학자의 지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학을 비롯한 각 학회의 학술연구활동은 「교수는 많아도 연구하는 교수는 적다」는 고질을 또 한번 노정 시켰다.
양보다는 질이 우대 받는 풍조가 아쉬웠다. 과기처가 지급한 조사연구개발 사업도 작년의 1억2천 만원에서 올해는 8천6백 만원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연구비 타령」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반면 기업체의 연구활동은 크게 늘어났다. 대기업의 자체 연구소설립 「붐」으로 연구원 「스카웃」 열풍이 한차례 불었으며 연구비·연구원 수·연구과제 건수 등이 대학의 증가율을 3배 이상 앞질렀던 한해였다.
국민 1인당 1원도 안 되는 과학진흥비는 국민의 과학화 운동이 예산 따기 위한 실적 위주의 현실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 과학기술진흥을 위해서는 과학행정력의 강화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 과학기술자들의 중론이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재미 이휘소 박사의 윤화 사망은 금년에 있은 가장 아까운 일이었다.
한편 의료계에서도 연초 「식초욧법」으로 떠들썩한 데 이어 의료보호 및 의료보험제도의 실시, 대학부속병원의 의료망 확충, 진단의학의 총아라는 CT의 도입등 분주한 한해였다.
식초욧법의 경우 당사자인 이병희 교수(한양의대)는 그 효과에 확신을 갖고 발표했으며 현재도 후속 연구가 자신 있게 진행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학계에서는 충분한 연구도 거치지 않은 성급한 발표로 오히려 부작용만 초래했다고 지적하고 있어 식초처럼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말았다.
학술연구로는 이호왕 교수(고려의대)의 한국형 출혈열의 계속 연구, 문국진 교수(고려의대)의 새로운 혈형 인자 발견, 김정룡 교수(서울대의대)의 B형 간염「백신」 연구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서울적십자병원에서 발생한 질소주입 사건은 의료계에 큰 충격을 준 불상사로 기록되고 말았다. <신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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