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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콘크리트' 입은 빌딩 … 도시 풍경 바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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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독일 화학기업 랑세스는 ‘녹’에서 착안한 천연 안료로 회색빛 일색의 콘크리트 건물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2010년 월드컵이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축구경기장(왼쪽)은 컬러 콘크리트로 지어져 아프리카의 전통 그릇 색깔을 재현했다. 세계적 건축가인 노만 포스터가 세운 스웨덴의 아르스타 철교(가운데), 제주의 화산암과 잘 어울리는 다음의 제주 본사인 다음스페이스닷원 건물(오른쪽). [사진 랑세스]

빨강과 검정으로 투박하게 그려진 들소와 사슴. 스페인 북부 산티야나 델 마르 지역의 한 동굴에 그려진 동물들이 인류에게 발견된 것은 1879년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구석기 시대의 조상이 그린 그림이라며 환호했고, 이 동굴은 ‘인류 최초의 그림’으로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로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을 독일 화학기업 랑세스는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봤다. 수만 년간 빛깔을 유지했던 벽화의 물감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벽화에 쓰인 안료는 우리가 ‘녹’으로 알고 있는 산화철이었다. 염료를 만들던 랑세스는 염료 제조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기는 이 산화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25년 강렬한 노란색과 검은색의 산화철을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랑세스는 오늘날 세계 최대의 산화철 안료업체가 됐다.

 최근 한국을 찾은 라파엘 수찬(33·사진) 랑세스 부사장을 지난 7일 서울 플라자호텔 비즈니스룸에서 만났다. 화학기업인 랑세스는 2005년 바이엘의 화학, 폴리머 사업부문이 갈라져 나오면서 태어났다. 그의 공식 직함은 무기안료사업부 아태지역 총괄, 글로벌 제품관리 부사장. 2002년 랑세스의 전신인 ‘바이엘’로 입사해 12년 만에 부사장 자리에 오를 정도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내부에선 랑세스 신임 최고경영자(CEO)인 마티아스 차헤트(47)에 이은 “랑세스의 두 번째 천재”로도 불린다. 그가 맡은 일은 회색빛 마천루에 ‘색’을 입히는 ‘색다른 일’이다. 그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도 쓰인 천연 안료로 콘크리트에 색을 입히고, 도심의 풍경을 바꿔나가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1925년 노랑과 검정 산화철 합성에 성공한 뒤로 랑세스는 40년간 이 기술을 묻어두었다. 그러다 이 안료를 콘크리트와 섞어 ‘색’을 내는 데 쓰기 시작한 것이 65년. 독일 쾰른의 한 라디오 방송국 건물에 ‘첫 실험’을 했다. 콘크리트는 통상 건축에선 뼈대 역할을 할 뿐 그 자체로 외관이 되진 않았다. 타일을 그 위에 붙이거나, 페인트를 칠해 안 보이게 숨기는 건축자재였다.

 하지만 빨강과 노랑, 검정, 갈색, 녹색의 다양한 안료 개발에 성공하면서 랑세스는 이를 콘크리트와 과감히 섞어 색을 내 ‘외장재’로 변신을 시켰다. 일반 콘크리트와 섞기만 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색깔은 100여 개. 페인트처럼 재칠을 하지 않아도 되는 데다, 콘크리트 수명 이상으로 색상이 오랫동안 유지됐다. 수찬 부사장은 “콘크리트의 색깔은 1000년 이상 유지될 수 있다”며 “어떻게 배합을 하느냐에 따라 환경과 각 지방에 맞게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컬러 콘크리트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업화를 했지만 본격적인 시장은 2000년대 들어서야 열리기 시작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 상’ 수상자인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스웨덴 스톡홀름의 아르스타 철교를 세우면서 벽돌색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이 열린 사커시티 경기장에도 컬러 콘크리트가 쓰이면서 공공 건축물에 속속 쓰이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전통 그릇인 ‘칼라바시’의 색상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이 경기장은 ‘아프리카 단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듬해엔 프랑스 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장 주변 보도, 2012년엔 영국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 당시 버킹엄 궁전 앞의 붉은색 아스팔트에도 쓰이면서 주목을 받았다.

 수찬 부사장은 “한국은 아시아 시장 중 컬러 콘크리트 적용 사례가 많은 시장”이라고 말했다. 파주 헤이리 출판단지의 다락원과 교문사 건물이나 한신문화사의 현대적인 건물이 모두 컬러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강화도 한복연구소의 따스한 흙빛, 제주의 화산암과 잘 어울리는 ‘다음 스페이스닷원’ 건물까지 쓰이면서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그는 “아직까지는 일반 건축보다는 초기 투자비가 비싼 편이다. 하지만 내구성을 감안하면 경제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컬러 콘크리트를 이용해 건물을 짓기 위해선 거푸집을 사용해야 한다. 일반 건축에선 거푸집을 여러 차례 재사용하지만, 콘크리트 자체가 외벽이 되는 공법에선 거푸집을 재사용할 수 없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컬러 콘크리트는 매력적인 사업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랑세스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빠른 도시화다. 랑세스 내부 예측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까지 인도와 중국에서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메가 시티’가 11곳이 생겨날 전망이다. 그는 “도시의 많은 사람이 더 아름다운 도시에서 살도록 하는 것, 도시 경관을 더 아름답고 환경친화적으로 만들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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