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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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화당정책위가 농지상한제의 철폐 등을 골자로 하는 농지법 제정에 앞서 농업기계화촉진법을 마련, 소작농이 논밭을 사면 융자나 조세감면의 혜택을 주기로 한 것은 옳은 방향이라 생각된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농업도 대규모화·기계화의 방향으로 나가야하지만 그 추진엔 순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오랜 농경시대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선 농지는 단순한 생산수단 이상의 큰 비중을 갖는다. 농업은 채산이 맞는다 하여 바로 시작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채산이 악화된다 하여 당장 폐업할 수도 없다.
따라서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농지문제를 획정한다면 장기적인 농업 대규모화나 기계화의 추진에 오히려 지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사회적 마찰을 최소로 줄이면서 농업의 기업화를 도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도는 무엇인가.
농업의 기업화는 먼저 농가당 경지면적의 적정화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나라 농업의 가장 근본적인 취약점은 경지면적이 협소한 것과 실질적인 소작농의 존재라 할 수 있다.
총 경지면적이 2백24만㏊인데 농가호수는 2백33만호나 되어 호당 경지면적이 0.96㏊에 불과하다.
또 이것마저도 격차가 심해 1㏊ 미만의 농가가 전체의 68%나 된다. 이런 영세적인 영농 규모로는 농업의 기업화나 채산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자연히 도시자본이 농촌에 침투, 자작농이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경자유전의 원칙이 위협받는 사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시급한 것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소작농에 농토를 갖게 하고 적정규모가 안 되는 자작농의 농토를 넓혀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번 공화당에서 농지기금 등을 설치, 소작농의 농지구입에 대해 금융·세제지원을 하도록 건의한 것은 시의에 맞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상대적으로 채산성이 낮은 농업부문에서 빚으로 농지를 구입, 원리금상환을 하면서 채산을 맞추기는 매우 힘들 것이므로 금융·세제지원은 파격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를 위해선 대담한 예산지원이 있어야 하고 정부는 다른 지출을 희생시키더라도 이 부문에 돈을 쏟겠다는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금융 「베이스」의 지원을 받아서는 현재 높아질 대로 높아진 농토를 소작농이 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음 경지의 협소로 인한 기계화·대규모화의 제약을 완화하기 위해 협동농업 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는 있다.
다만 그러는데는 오랜 관습에 비추어 상당히 주저될 것이므로 농협이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느 시범지역에서부터 출발하여 경제적 실익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벼의 품종개량도 처음엔 저항이 많았으나 그것이 정부수매 등을 통해 경제적 실익으로 실감되고 나서부터 가속적으로 보급되었다. 협동농을 위해선 이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세심한 지원과 유도가 필요할 것이다.
정부의 지원에 의해 농가의 경지규모를 늘리려 해도 먼저 농지의 절대면적이 확보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전국적으로 볼 때 농지가 적은데다 농지는 쉽게 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GNP의 20%를 생산하는 농업부문에 총인구의 40%나 매달려 있는 경제구조에선 농가당 경지의 평균적인 확대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거시적인 입장에서 볼 때 제조업 등 타산업의 발전에 의한 농촌인구의 흡수가 농지문제 해결의 가장 기본 바탕이 될 것이다.
농촌인구가 적으면 농업의 기계화·기업화는 저절로 이룩될 것이므로 농지문제는 타산업과 관련한 종합적인 안목에서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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