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동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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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재 한국경제에 있어 가장 심각한 것은 물가 문제라 할 수 있다. 성장·국제수지·물가 중 이제까진 국제수지가 가장 애로부문이었으나 금년을 고비로 물가가 더 심각성을 띠게 된 것이다.
실상 금년 초 정부당국이 총자원예산에서 세운 여러 정책목표 중 물가가 특히 계획에 미흡할 전망이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부당국의 공식적인 물가지수가 어떻게 나오든 금년 물가가 10%내로 안정되었다고는 믿기 힘들 것이다. 물론 물가가 10%를 상회한 것은 국제수지의 대폭적인 개선, 실질성장의 호조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지만 물가를 희생하고서 다른 부문을 초과 달성하는 것이 정책운용 면에서 과연 소망스러운 것이냐엔 의문이 있다.
금년의 실질물가라 할 수 있는 GNP 「디플레이터」는 15%이상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며 실제 가계에서 느끼는 물가는 그 이상일 것이다. 물가지수와 실제 물가와의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부당국이 10%의 물가 안정을 약속했을 땐 일반 국민들은 으레 생활하면서 느끼는 물가의 안정을 기대할 것이고 물가 안정 약속의 의의는 바로 그런 데에 있는 것이다.
물가지수와 가계 물가와의 괴리가 이토록 심하다면 차라리 내년부턴 가계 물가를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지표를 따로 만드는 것이 일반국민이 생활계획을 세우는 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현 물가는 시장기능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행정규제에 의해 억지로 눌러진 것이 많으며 금년보다 내년이 더 우려된다는 데 물가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연율 40%가 넘는 과잉유동성과 부가세 실시·수입원자재 가격의 인상·막대한 양특 적자 등으로 물가가 오를 요인이 많은 데도 금년 물가가 공식 지수상으로 10%선으로 억제된다면 많은 물가 상승요인이 내년으로 이월된다고 볼 수 있다.
그 위에 내년엔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의 상승·곡가 인상·공산품가 동결의 해제 등 물가 상승요인이 많다. 금년에 급격히 늘어난 통화가 내년에 가면 초과수요로서 물가를 본격적으로 자극할 것이다. 그 위에 급격한 경제팽창과 중동진출 등에 따른 임금상승도 물가 압력요인으로 나타날 것이다.
해외요인으론 「엔」화 절상에 의한 수입원자재가 인상은 벌써 시작되었고 원유가가 계속 고정된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처럼 내년 물가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사회일반에 만연되고 있는 투기행위에서 잘 반영, 예고되고 있다. 이런 절박한 물가여건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당국이 앞으로 과연 얼만큼 정책적 대응을 하는 가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운용의 틀은 성장제고와 국제수지개선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이는 경제기조가 바뀐 지금도 계속 작동하고 있다. 국제수지와 성장에 주력하면 물가에 주름이 오게 마련이다.
환율·통화·투융자·무역계획 등에서 특히 그렇다. 금년의 물가 상승이나 내년 물가의 심각성은 중동입금 등으로 경제기조가 완전히 바뀌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정책대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와 같은 행정규제나 일시적인 편법으로 물가를 안정시키기엔 사태가 너무나 심각하다.
물가 안정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기조의 전환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내년 물가의 심각성에 대해 좀더 깊은 인식과 대처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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