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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키스탄 시각장애 학생 9명, 빛과 꿈을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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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6일 대구 동산의료원 병동에서 장성동 교수(오른쪽)가 개안(開眼)수술을 받은 쉐르조드(15)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환자복을 입은 이들은 이미 수술 받은 타지키스탄 친구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선생님, 바다가 보여요.”

 18일 오후 2시 부산 해운대. 무사미르조다 오미나(13·여)가 살리호바 수라요(48·여) 선생님을 향해 탄성을 질렀다. 타지키스탄에서 온 오미나는 바다를 처음 봤다. 어릴 때부터 초고도근시(近視)여서 앞을 거의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30㎝ 앞의 손가락 윤곽만 흐릿하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안경으로도 조절을 할 수 없어 눈동자가 눈 안쪽으로 심하게 몰리는 사시(斜視) 증상도 생겼다.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기피했다.

 12일 방한해 13일 수술을 받은 오미나는 수술을 통해 시력을 0.3까지 회복했다. 얼굴엔 자신감이 넘쳤고 당당하게 사진을 찍었다. 오미나는 “이젠 친구들 뒤에 숨지 않아도 된다. 옆 병상에 누워있던 남학생이 잘 생겼다는 사실도 몰랐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날 오미나를 비롯해 타지키스탄에서 온 9명의 학생이 해운대 관광을 함께했다.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서 30㎞ 떨어진 히소르의 국립 시각장애인학교 학생들이다. 히소르에는 제대로 된 병원이 없다. 두샨베에 국립 안과병원이 있지만 안과 수술 비용이 현지 직장인의 연봉과 맞먹는 1500달러(약 153만원) 수준이라 수술은 엄두도 못 냈다.

 계명대가 실명의 위기에 처한 이 아이들을 도왔다. 이 대학 교직원들이 월급의 1%씩 기부하는 ‘계명 1% 사랑 나누기’를 통해 모은 성금으로 항공비와 수술비 등 9000여만원을 전액 지원했다.

 발리예프 샤리프혼(23)은 이번에 인공수정체 삽입 수술을 통해 시력을 되찾았다. 타지키스탄에서 잘못된 백내장 수술로 눈 앞에 손이 왔다갔다하는 것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이제 시력이 0.32까지 회복됐다.

 시력 때문에 학교에 늦게 진학해 또래보다 한참 늦은 12학년(고3에 해당)인 그는 “안경을 쓰고 열심히 공부해 히소르 시장이 된다면 의료 환경이 열악한 동포들이 나처럼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은 7월 타지키스탄 현지를 방문해 22일 본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수술 예후를 점검해줄 예정이다. 동산의료원 이세엽 병원장은 “여권 문제 등으로 한국에 못 오는 타지키스탄 분들을 위해 7월 5~12일 현지에 가서 무료 안과 수술을 해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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