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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대의 물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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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명동이 젊은이와 여성의 거리로 변한지는 벌써 오래 전이다. 『음악을 듣는다』하면 귀가 찢어질듯 터져 나오는 다방, 『술을 마신다』 하면 통「기타」와 번쩍번쩍 「사이키델릭」조명아래 「파라다이스」 한 병의 하룻저녁이다. 『명동은 술집만 빼고 여자 세상』이라던 풍자도 이제는 낡은 얘기 축에 들어간다. 맥주「홀」과 「애플·와인」 술집, 대폿집에까지도 「테이블」에 여자수가 더 많을 때가 적지 않다.

<맥주·홀 여자 손님 늘어>
술집은 한결같이 「젊음의 휴식처」라는 선전문을 달고 있다. 간혹 「늙은 사람」들이 섞인다. 『젊어지고 싶어서…』『젊은 세태를 구경하고 싶어서…』 대개 이런 말을 하면서 시끄러운 「몽·세르·통통」, 어두운 「코스모스」에 두리번거리는 점잖은 신사들이 섞일 정도다.
낮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도저히 한가하게 걸음을 옮길 수 없는 젊은이들의 물결.
명동에 인파가 몰리기 시작하는 것은 하오 2시부터다. 5시쯤엔 「피크」를 이뤄 「코스모스」 백화점에서 명동성당에 이르는 주도로와 주변 골목길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없는 사람의 홍수다.
경찰 집계에 따르면 명동의 하루 통행 인파는 약 1백만명. 80%가 20대의 젊은이고, 이중 70%가 여성이라는 것. 숫자로 어림잡으면 20대 여성이 56만명, 남성 24만명이 하루 명동을 드나든다는 계산이다. 「젊은이의 성역」이라고나 할까. 젊은이들은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는 곳」이 바로 명동이라고 말한다. 부담 없이 이성을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곳, 마음대로 「아이·쇼핑」을 할 수 있는 곳, 거리낌없이 떼지어 방황을 할 수 있는 곳, 또 「우리들끼리」 만나는 곳이 바로 명동이라는 것이다.
E대 3년 박혜정 양 (23)은 대학 입학 시험에 합격한 후 친구들과 처음 이곳에 들렀을 때 너무 동떨어진 세계에 얼떨떨했지만 『몇번 나와 보니 이곳이 아주 편리하고 더욱 나를 세련시켜 주는 것 같다』고 했다.

<하오 5시쯤이 「피크」>
명동을 찾는 여성이 여대생만은 아니다. 재수생·직장 여성에다 갓 결혼한 주부도 많다. 최근엔 공단 주변의 아가씨들까지 「명동 여성」의 대열에 끼어 그들만이 잘 다니는 다방이 생겨났다.
이곳에서 7년간 술집을 경영해 온 이종환씨 (36)는 한마디로 호화로운 「쇼윈도」의 비싼 구두와 비싼 옷, 비싼 「코피」, 이런 것들이 명동의 인구를 늘린다고 말한다. 환상을 쫓는 초점 없는 눈동자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통 시장 가격보다 두배쯤 비싼 「메이드·인·명동」의 위력은 여성들의 환각과 허영심을 만족시키기에 안성맞춤인 것 같다.
K양장점 주인 고명심씨 (36·여)는 『의상 값이 시중과 같거나 더 싸다면 고객이 몰리지 않을 것』이라고 실토했다.
여대생들 사이에서는 명동만을 찾는 학생들을 「명동 병 환자」라고 부른다.
신입생 때 말로만 듣던 「명동」을 누구나 으레 한 두 번은 가보는데 뭐든지 명동만을 찾는 친구들이 생겨나니까 붙여진 이름이다.
옷·구두·「핸드백」·「머플러」…학기가 시작할 무렵이면 명동이 더욱 바빠진다는 상인들의 이야기다.
『요즘 여대생 돈 씀씀이는 돈 많은 어른들을 뺨칠 정도입니다. 외제 값비싼 것만 찾아 쓰는 학생이 상당히 많아요. 굵직한 집안의 자녀들은 명동에 자가용을 세워두는 「노른자위 손님」이라고 어느 양장점 주인은 일러준다.
여성 인파의 틈에 명동을 메우는 젊은 남성들은 주로 유흥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대열.
젊은이 상대라 외상은 안되지만 비교적 「바가지」가 없는 술집, 여자 손님들과 「합석」이 자유로운 분위기로 명동이 더없이 흥미로운 곳이라고 말한다.

<바가지 없고 합석 쉬워>
대학생·직장 초년생·재수생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여자들과는 달리 이들의 「명동 방황」은 한두달로 끝나는 것이 특징.
업소마다 한달 이상의 단골이 없으며 언제나 또 다른 젊은이로 만원을 이룬다. 그러나 여성들과 같이 일단 「명동 병」에 전염되는 경우 유흥업소 주변을 맴돌거나 이곳의 폭력배들과 어울려 건달로 전락해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같은 젊음의 물결에 따라 이곳의 유흥업소도 대부분 젊은이 대상 업소로 탈바꿈해왔다.
5백여개의 유흥업소 중 4백여개가 「젊은이의 안식처」로 간판을 걸었고, 나머지 업소들도 점차 그런 성향을 따라가고 있다.
「젊은이의 업소」는 대개 4, 5년 전 「송·뮤직」과 「고고·붐」을 타고 윤형주·김세환·「어니언즈」 등을 비롯한 젊은 가수들을 앞장 세워 시작됐었다.

<거의가 「젊은이 업소」로>
이들 업소의 「홀」안은 옆 사람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던 것이 특징. 컴컴해야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이 출입할 수 있고 여성들이 출입해야 남자 손님이 모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나라에선 유일하게 젊은이들의 초저녁 「고고·클럽」이 있는 것도 「젊은 명동」을 잘 설명해준다.
1년 전 문을 연 이 업소는 젊은이들을 끌기 위해 「그룹·사운드」 경연 대회 (5월), 새로 나온 춤 「허승」 시범 모임 등을 열어 축제 「무드」에 굶주린 학생들을 모았고 지금은 4, 5층 6백여 석이 매일 밤 만원을 이룬다.
명동 만원-젊음의 발산을 고작 이렇게 해서야 되겠느냐는 반성은 『그래도 여기 밖에 갈 곳이 없다』는 그들의 탄식과 함께 여전히 거리를 메운다.

<박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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