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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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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호 14면

1 트래블 라이브러리 외관

서울 선릉로 152길 18. 좀 풀어 말하면 학동사거리 근처다. 클럽·카페·레스토랑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사라지는 골목. 이 변화무쌍한 동네에 도서관이 들어섰다. 현대카드가 14일 새로 문 연 ‘트래블 라이브러리’다. 위치도 위치거니와 ‘여행 도서관’이란 개념 역시 불분명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 딱히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서울 선릉로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하얀 외벽의 건물로 들어가서도 도서관의 포스는 그닥 없다. 리셉션 벽 하나에 설치된 수동식 비행 안내판이 30분에 한 번씩 타닥타닥 소리를 낸다. 물통이나 담요 같은 여행 소품도 한 켠에서 팔고 있다. 리빙 편집숍의 아기자기한 맛이 난다. 이를 지나쳐 들어서면 기다란 나무 테이블이 1층 한가운데 배치된 카페가 있다. 4500원짜리 아메리카노 커피와 1만원대의 수입 에일 맥주, 간단한 스낵을 파는 이곳의 미덕을 찾자면 요란한 컬러를 절제한 자연스러운 인테리어와 햇살을 받을 수 있는 테라스 테이블이 따로 있다는 점이다.

반전은 고개를 드는 순간부터다. 2층을 올려다보면 꼭대기까지 탁 트인 공간 사이사이로 서가가 보인다. 게다가 수많은 대각선이 연결된 천장. 나무 책장이 덮은 모양새다. 이곳이 수다보다 사색이 어울리는 도서관이라는 사실이 순식간에 다가온다.

2 비행기 트랩을 본떠 만든 일명 ‘구름 계단’이 1층과 2층을 연결한다.

여행 서적 1만4761권 … 실내장식도 여행 분위기
도서관의 실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야 제대로 드러난다. 이리저리 과감하게 꺾인 이 하얀 계단은 ‘여행’ 분위기를 내려 비행기 트랩을 본떠 만들었단다.

2층으로 직진하기 전 작은 공간이 하나 있는데, 도서관이 최고 자랑으로 여기는 보물이 여기 있다. 1889년부터 발간된 다큐멘터리 전문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권이다. 또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여행지리 저널 ‘이마고 문디’ 전권과 한국을 조명한 현존 최고(最古) 기관인 영국 왕립 아세아학회 한국지부의 학술지 ‘트랜잭션스’ 전권도 함께 비치돼 도서관의 ‘급’을 올려 준다.

2층의 분위기는 1층에서 바라본 광경과 사뭇 다르다. 그야말로 아늑하다. 공공 도서관과 달리 마치 누군가의 서재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조도를 낮춘 데다 돔 형태의 천장이나 높낮이가 다른 책장, 사각으로 반듯하지 않은 공간 덕이다. 파리 편집숍 ‘콜레트’ 매장과 뉴욕 소호 ‘유니클로’ 매장 등을 디자인한 가타야마 마사미치가 인테리어를 맡아 ‘책의 동굴’이라는 컨셉트를 구현했다. 여기에 작은 테이블, 서가 옆에서 잠시 걸터앉을 수 있는 간이 의자가 편안함을 더한다. 사람이 몰리면 이런 분위기가 유지될까 싶었는데 도서관 측도 이를 염두에 두고 2층 입장 인원을 30명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곳의 여행 관련 서적은 모두 1만4761권에 이른다. 더구나 여느 도서관이나 서점처럼 지역을 위주로 책을 찾다간 제대로 구경도 하지 못하고 갈 수 있다. 이곳만의 방식이 따로 있다. ‘아트와 건축’ ‘어드벤처’ ‘음식과 음료’ ‘캠핑’ ‘박물관’ 등 여행에서 가장 관심사가 될 만한 테마를 13개로 나누는 한편 196개국 나라의 서적을 5개 지역으로 나눠 구분해 놨다. 위도와 경도로 지도에서 위치를 찾아내듯 이 둘의 교차점으로 책을 고르면 된다.

3 2층 서가의 모습. 수많은 대각선이 이어진 천장과 책장을 위로 연결시킨 듯한 인테리어가 마치 동굴 같다.
4 세계 주요 도시 90여 곳의 시티 맵이 비치된 공간.

지역 대신 테마 위주 배열
테마를 내세운 데는 이유가 있다. 이제 여행이 관광이 아닌 경험이 돼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현대카드 이미영 브랜드본부장이 설명을 보탰다. “이제는 트렌드에 따르지 않는 장소, 어디 갔다 왔다는 기념사진이 중요하지 않은 여행이 필요한 때에요.” 그러면서 그는 “여행 도서관에 온 것부터가 여행의 시작이다”는 말을 덧붙였다. 목적지를 뒤로 한 채 일단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지낼 것인가’라는 자신에게 맞는 테마를 찾아 나서는 자체가 여행의 출발점이라는 얘기였다.

책 큐레이팅은 자연스레 이러한 관점에서 시작됐다. 해외 서적 선정 작업에 참여한 넷 중 한 명으로, 타임지의 여행레저 에디터인 카롤리나 미란다의 말은 이런 배경이 녹아 있다. “그저 라이브러리를 어슬렁거리며, 책 더미 속에서 길을 읽고 아무 책이나 하나 집어 들어라. 아마 이런 식이 아니라면 절대로 읽지 않았을 책과 장소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좋은 라이브러리에는 놀라운 발견이 있다.”

‘발견(find)’과 더불어 도서관은 두 가지 요소를 추가했다. 놀이(Play)와 계획(Plan)이다. 2층 서가 사이 작은 방 벽 전체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구글 지도를 확대해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내가 가보고 싶은 곳, 관심 있는 곳을 먼저 사이버상에서 경험해 보는 재미를 노렸다. 여기에 컨시어지를 따로 둬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상담과 예약을 도울 수 있도록 했다.

도서관을 나오면서 문득 든 궁금증은 하나다. 국내 해외여행 인구가 연간 1600만 명에 이르는 지금, 이 정도면 우리도 새로운 여행 트렌드가 생겨날 시점일까. 과연 책을 보며 ‘자기주도적 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을까. 도서관의 새로운 도전을 지켜보는 이유다.



트래블 라이브러리 입장은 현대카드 회원으로 제한된다. 월 8회, 본인과 동반 1인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개장 시간은 매주 화~토요일 정오부터 오후 9시. 일요일과 법정공휴일은 오전 11시~오후 6시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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