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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제품·서비스·경영 … 디자인적 사고로 무엇이든 ‘혁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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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호 24면

세계 최고의 디자인기업으로 평가받는 IDEO의 데이비드 켈리 창업자 겸 회장(오른쪽)과 그의 동생 톰 켈리 전 최고경영자(CEO). 형제는 여전히 IDEO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며 사회 혁신과 교육 분야에서 남다른 업적을 이어 가고 있다. [사진 IDEO]

미국 실리콘밸리 스탠퍼드대에는 2개의 유명한 ‘스쿨(school)’이 있다. 하나는 B스쿨, 또 다른 하나는 D스쿨이다. B스쿨은 비즈니스스쿨, 즉 경영대학원을 말한다. D스쿨은 디자인스쿨, 그러니까 디자인연구소(Hasso Plattner Institute of Design)의 줄인 말이다. 스탠퍼드 비즈니스스쿨은 잘 알려진 명문이다. 졸업하면 MBA 학위가 생긴다. 반면 D스쿨은 열심히 다녀 봐야 학위는커녕 학점 인정도 못 받는다. 그렇지만 실리콘밸리 혁신기업들로부터 더 큰 찬사를 받는 쪽, 스탠퍼드대 방문객들이 줄 서서 견학하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D스쿨이다.

<33> 디자인계 최고봉 ‘아이데오’ 세운 켈리 형제

D스쿨의 리더는 데이비드 켈리(David Kelly·63)다. 세계 최고 디자인기업으로 꼽히는 아이데오(IDEO)의 창업자 겸 회장, 스탠퍼드대 석좌교수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IDEO를 ‘디자인업계의 맥킨지’로 함께 키워 낸 동생 톰 켈리(Tom Kelly·59)가 있다. IDEO의 전 최고경영자(CEO)이자 현직 파트너인 그는 처음 합류할 당시 직원이 15명에 불과했던 IDEO를 600명이 넘는 인재가 집결한 글로벌 혁신기업으로 키워냈다. 『유쾌한 이노베이션』 『이노베이터의 10가지 얼굴』 등과 같은 책을 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 이들 형제는 『유쾌한 크리에이티브』라는 창의력 계발서를 공동 집필했다. D스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실제 이들이 창안한 방식에 따라 훈련한다. 의학·물리학·철학·공학·음악·역사학 등 다양한 전공자들이 섞여 있다. 이들은 그저 뭔가를 좀 더 미끈하고 편리하게 만드는 것을 뛰어넘어 사용자경험(UI)을 바꾸고 문제를 해결하며 조직을 혁신하는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에 집중한다. 이야말로 IDEO를 오늘의 자리에 서게 한 원동력이다. 애플·P&G·삼성전자·루프트한자·BBC·AT&T 등 수많은 기업이 IDEO에 제품·서비스 디자인뿐 아니라 마케팅·조직·경영혁신 컨설팅까지 의뢰하는 연유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는 이 회사를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평했다. 경영학의 구루로 불리는 톰 피터스 또한 “IDEO는 내가 유일하게 일하고 싶은 회사”라는 말로 이 회사의 혁신성을 상찬했다. 지금껏 250여 개의 디자인상을 탔으며 1000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생각 막으면 생각이 태어나지 못한다”
켈리 형제는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다. 형 데이비드는 카네기멜런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뒤 보잉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스탠퍼드대에서 산업디자인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취업 대신 창업을 택한다. “개인의 창의력을 무시당한 채 하루 10시간씩 일하는 조직에서 평생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978년 실리콘밸리 심장부인 팰로앨토의 허름한 건물 2층에 ‘데이비드 켈리 디자인’을 차렸다. 이 시기의 대표작은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의뢰로 만든 PC 마우스였다. 데이비드에게 지금의 아내를 소개해 준 것도 잡스였다. 87년 동생 톰이 IDEO에 합류했다. UC버클리대에서 MBA를 한 그는 제너럴일렉트릭 등에서 컨설턴트로 일했었다. 91년 형제는 ‘아이디 투(ID Two)’ ‘매트릭스 프로덕트 디자인’ 등 3개의 회사를 합병해 IDEO를 출범시켰다. 회사 이름은 ‘이데올로기(ideology)’란 단어에서 ‘아이디어’를 뜻하는 접두사만을 따로 떼낸 것이다.

켈리 형제는 우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던 기업문화를 창안했다.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세계 9개의 IDEO 사무실은 산만한 놀이터를 연상케 한다. 천장에는 직원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와 전투기 프로펠러 등이 매달려 있다. 벽 여기저기에는 포스트잇과 사진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가장 전망 좋은 곳은 임원실이 아닌 주방과 자료실이다. 사실 이 회사에는 직위나 조직도, 고정 보직 같은 것들이 없다. 직원들은 본인이 원하는 팀장과 프로젝트를 택해 집중적이고 자유롭게 일한다. ‘생각을 막으면 생각이 태어나지 못한다’ ‘회사에 있는 시간을 사랑하고 뚜렷한 문제의식을 지닌 열정적 팀이 가장 높은 성과를 낸다’는 켈리 형제의 신념 때문이다.

폭 넓고 깊이 있는 T자형 인재 집합소
IDEO는 특히 공감력을 중시한다. 이 때문에 직원 대부분을 이른바 ‘T자형’ 인재로 채웠다. T자의 가로 획은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세로 획은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의미한다. IDEO에 목수·기술자·과학자에서 고고학자·심리학자·언어학자·인류학자·경영컨설턴트·회계사 등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득한 이유다.

IDEO에서는 이들로부터 최고의 역량을 이끌어 내기 위해 ‘5단계 사고법’을 활용한다. 첫째, 고객에 대한 관찰이다. 이를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고 고객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통찰한다. 둘째, 팀 브레인 스토밍이다. 한 시간 내에 최소 100개 이상의 아이디어를 전투적으로 제시한다. 이때는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이 있다. ‘판단을 유보하라’ ‘한 번에 한 가지만 생각하라’ ‘포스트잇에 생각나는 것을 적어라’.

셋째, 프로토타이프 만들기다. 이때는 3R 원칙을 지킬 것을 강조한다. 대략적으로(Rough), 빠르게(Rapid), 톡 찍어서(Right) 당장 행동하라는 것이다. 넷째, 소비자들의 세심한 의견을 반영해 미세한 조정을 통해 최적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다섯째, 실행이다. 제품 생산과 관련한 모든 전문가를 동원해 완성품을 내놓는다. 99년 미국 ABC방송 나이트라인은 IDEO가 바로 이 같은 방식으로 5일 만에 혁신적인 쇼핑 카트를 개발하는 모습을 방영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는 ‘잔돈은 가지세요(Keep the change)’ 직불카드 서비스를 디자인해 1200만 명의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소비자가 물건을 살 경우 딱 떨어지는 정수로 계산하고, 실제 물건 값과의 차액인 잔돈은 자동으로 저축되는 방식을 개발해 인기를 끈 것이다.

요즘 켈리 형제의 주요 관심사는 사회적 혁신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개발도상국 사회혁신가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인간 중심 디자인 툴킷’, 세계 디자이너들이 인류 공통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오픈 IDEO’, 사회적 디자인을 위한 국제기구 ‘IDEO.org’ 등을 속속 내놓고 있다.

2012년 세계 최대 지식콘퍼런스 TED에서 데이비드 켈리는, 자신이 몇 년 전 심각한 암으로 생존 확률이 40%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 때문에 가장 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을 당장 실행하기로 했으며 ‘창조력에 대한 사람들의 자신감을 찾아 주는 것’이 바로 그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자신감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면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스스로를 창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남의 비난이나 비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기 사고(思考)의 주인으로 용감하게 나서는 것. 오늘날 IDEO가 이룬 성공의 가장 밑바탕엔 아마도 그러한 전복과 도전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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