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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문제의 공개시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입예시문제를 복사 시판한 잡지사에 대해 문교당국은 전례없이 강경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애써 관철시키려던 예시문제 비공개 시책이 두번씩이나, 그것도 같은 잡지사에 의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문교당국의 심사가 심상치 않으리라는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감정에 치우치거나 납득할 수 없는 방법을 통한 공권력행사는 국민의 납득을 얻기 어려울뿐더러 자칫 권력의 남용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법률에 근거가 없이 국민의 자유나 권리를 제한하러든다든가, 정당한 절차를 일탈하여 자의로 행정권을 확대 행사하려는 것은 법치국가의 기본원칙을 무너뜨리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견지에서 이번 당국의 태도는 분명히 몇가지 문젯점을 내포하고있다.
우선 예시문제의 복사판매행위가 어느 법규에 저촉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문교당국은 예비고사문제는 저작권법에 의한 저작물이라고 주장, 75학년도에도 대입예시문제를 전대했던 문제의 잡지사를 저작권 침해로 경찰에 고소한바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항소심공판에서 진학사에 무죄가 선고됐으며 아직도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따라서 잡지사의 예시문제공개행위는 현재로는 처벌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세청에 문제된 잡지사에 대한 세무사찰을 의뢰하고 문공부에 잡지의 등록취소를 요청하는 등의 처사는 좀 지나친 것 같다. 법적으로 할 수 없으니 위력의 수단을 써서라도 행정당국의 자의를 관철시키려는 감정적 처사가 아닌가하는 의혹을 살만하다. 세무사찰이란 검찰의 고발이나 주무부처의 조사를 통해 탈세혐의가 짙거나 명백한 세금포탈의 증거가 있을때에 한해 이를 밝혀내기 위한 것이지, 결코 보복적 수단으로 그 이외의 특정 목적달성을 위해 남용돼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예시문제비공개방침이 문교당국의 일관된 시책이었다면 문제지 유출의 1차적인 책임은 누가 뭐래도 문제를 작성·관리하는 당국자 자신에 있다해야 하지 앉겠는가. 문제를 입수해서 게재한 잡지사에 대한 규제보다 자체의 보안조치를 철저히 한다면 문제지 유출사건은 원천적으로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교육에 관한 주무부처인 문교당국이 내걸고 있는 문제지 비공개방침이 과연 교육적으로 타당한 것인가에 있다.
당국은 예시문제가 객관식 문제이기 때문에 공개될 경우 학생들이 단답 위주의 공부를 할 우려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시험문제 자체를 주관식 위주로 바꾸어야 할 일이다.
문제는 단답형으로 내면서 공부는 주관식으로 하라는 것은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문제의 비공개가 세계적 추세라는 이유도 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의 대입예시같이 성격이 모호한 시험제도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을뿐더러, 사실은 거꾸로 선진국에서는 다수의 객관식문제를 비치하여 언제든지 대여까지 해주는 『문제 「뱅크」』까지 존재하고 있지 아니한가.
문교당국은 이밖에 문제의 공개로 정답을 둘러싼 시비의 여지가 있게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주장 역시 아무런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시험도 학습의 연장인 이상 문제를 떳떳이 공개해서 자유로운 토론과 전문가의 비평을 거쳐 시험의 공신력을 높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이는 또 고교생들의 진로결정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도 도리어 교육적으로 권장돼야할 일이 아니겠는가. 때문에 예시문제의 비공개를 고집하는 문교당국의 방침은 우선 그 주장의 타당근거 자체가 취약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예비시험문제는 수험생 30여만명에게는 이미 공개된 것이고 더구나 고등학교 교사들이 시험감독관으로 들어간 것을 상기할 때 해마다 시험문제가 이들을 통해 대부분 정확히 공개 유포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점에서 시험문제 비공개를 굳이 고집하는 문교당국의 태도는 그 실효성조차 의심스럽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당국은 지금이라도 한낱 잡지사를 상대로 감정적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툭 터놓고 시험문제를 공개하는 과단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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