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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관계 안정, 北核해결 도움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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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극심한 국론분열과 사회갈등을 초래했던 이라크전(戰) 파병동의안이 2일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파병안을 의결해 국회에 동의를 요청한 지 12일 만이다.

국회의 파병안 심의.처리 과정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이 충분한 찬반토론을 통해 파병안을 처리한 것은 나름대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파병안 가결로 한.미 동맹관계가 보다 단단해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기대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파병안에 대한 국회의 동의를 당부하며 '명분'보다는 '국익과 현실'을 강조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로써 참여정부 출범 이후 불안해 보였던 한.미관계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파병안 처리는 향후 여야관계.국회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번 盧대통령의 정책결정에 대해선 여당인 민주당보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더 열심히 지원했다. 이는 상생(相生)의 정치를 위해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평가다.

청와대는 "한나라당이 盧대통령을 공격하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보태준 것은 청와대와 야당의 새로운 관계정립 사례로 남을 것"(정무수석실 관계자)이라며 고마워하고 있다.

반면 盧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는 미묘해졌다. 盧대통령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지원세력인 민주당 신주류 의원들 중 다수가 파병에 반대했다. 이로 인해 당정(黨政)분리의 실상이 실감나게 표출됐다.

청와대가 반대의원들에게 찬성을 강하게 설득하지 않아 여당과 함께 청와대까지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는 향후 여권의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각도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파병안에 대한 의원들의 선택이 앞으로 보혁(保革)중심의 정계개편으로 이어지느냐다. 파병에 반대한 여야 의원 대다수가 진보성향인 반면 파병 찬성파는 여야를 막론하고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신.구주류 갈등과 한나라당의 보혁의원 간 대립은 앞으로 변화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파병안에 대한 찬반토론이 충분하게 진행됐으며, 표결이 의원 자유투표(Cross Voting)로 이뤄진 것도 일단 발전된 모습이다. 1960년대 사라졌던 국회 전원(全院)위원회가 2000년 부활된 뒤 이번에 처음으로 열려 의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파병안 처리는 숙제도 남겼다. 파병안이 통과됐지만 국론분열과 사회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파병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르면 다음달 초로 예상되는 건설공병과 의료부대 파병을 저지하기 위해 더욱 격렬한 시위를 계획 중이다.

盧대통령으로선 강력한 지지기반이었던 노사모와 시민단체를 어떻게 달래느냐 하는 정치적 과제를 안게 됐다. 이게 여의치 않을 경우 향후 盧대통령의 개혁드라이브는 추진 엔진의 이탈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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