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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교생의 체위 이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초·중·고교 학생들 사이에 후천적인 체위 이상이 늘어 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나라 학교의 비인간적 교육 환경이 마침내 그 병리 증상을 현재화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교육의 비인간화 현상은 그 동안 학교 교육이 학생들의 신체적·정서적 발달을 돌볼 겨를 없이 단편적인 지식 주입에만 지나치게 급급하는데서 빚어진 것임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어린 학생들에게 체력의 한계를 넘는 책가방의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것이 지적 된지 오래 되었는데도 조금도 개선의 움직임이 없었다는 것은 인간성을 상실한 한국 교육의 병태를 여실히 증명한다.
문교 당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한 여고생의 책가방에는 교과서 7권,「노트」 8권, 참고서 2권, 사전 2권, 필통 1개, 도시락 2개, 체육복과 실내화 등 24가지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교련이 있는 날은 이밖에 또 교련복과 교련 가방을 지참해야 하고 미술·수예 도구까지 준비해야 한다.
이리하여 학생들의 책가방은 최고 12·1kg으로 체중의 14∼22%에 이르고 있으며, 특히 국민학교 여아들은 평균 20%를 초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처럼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혼잡한 거리의 인파,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버스」속을 헤치며 등·하교를 해야 한다.
여기다 과밀 학교의 비좁은 교실·체격에 맞지 않은 책상·의자 등 학교 시설이 학생들의 정상적 신체 발육을 더 한층 저해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 국민학교 아동 1인이 차지하는 교실 공간은 겨우 0·8평방m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곧 한창 성장기의 학생들이 범법자들의 구치소보다 좁은 공간에서 낮 시간의 대부분을, 그리고 귀중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지내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나라 청소년들의 앞날을 위해 이 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오늘날 성인들이 일하는 사무실은 날로 수세식 화장실과 난·냉방 시설, 현대적 도구 등을 갖추어가고 있는데 유독 어린학생들만은 불결한 환경에서 배워야 하고 한 겨울에도 난로도 없이 떨어야 한다면 그 얼마나 비인간적인 사태인가.
빈약한 교육시설·추운 교실·불결한 화장실 등 가난에 찌든 학교의 모습은 그 동안 눈부신 양적 성장의 지수 뒤에 가려진 한국 교육의 어두운 단면이 아닐 수 없다.
교육의 정상화와 질적 향상을 위해 그 동안 우리 사회가 베푼 정신적 배려나 재정적 지원이 너무나 미약했음을 깊이 반성할 때가 온 것이라 하겠다.
통계상으로 우리 나라의 공 교육비는 학생 1인당 40「달러」선으로 선진국의 8백62「달러」해 20분의 1에 불과하다.
학교가 이처럼 빈약한 재정 지원을 받고서 국민 교육의 막중한 책임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렇게 볼 때 국가의 정책적 비중에 있어서 교육에 대한 지원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어야 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초·중·고의 60%에 이르는 학생들에게 체위 이상을 유발하고 있는 무거운 책가방문제는 당장 해결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수대로 교과서를 학교에 비치하는 방안이나 교과서와 「노트」를 일정한 분량으로 분철하는 방법이 검토돼야 한다.
실제로 서울 무학 여중에서는 분리가 필요 없는 음악·미술·체육을 제외한 9개 과목을 과목당 평균 10∼15장씩 떼어 두꺼운 종이로 「커버」를 씌워 사용하는 방법으로 책가방의 무게를 2km미만으로 줄이는데 성공한 실례가 있다.
또 서울의 한샘 여중에서도 「상급생 책 물려받기 운동」을 전개, 학교에서는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하고 등·하교 때는 「노트」와 도시락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학생들을 책가방의 부담에서 해방시키는데 성공했다한다.
국민의 체력이 바로 국력이고, 인간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임을 생각할 때 학생 체위의 정상화를 위한 교육 환경의 개선은 국가적 차원에서 모색돼야 할 시급한 과제임을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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