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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아기 엄마는 모두 보호 받아야 한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월 6일 화요일 부처님 오신날. 연휴 마지막 날이다

"집에서 음악 듣고 밀린 글 쓰고 체육관 가서 몸좀 풀고........" 하면서 느긋한 하루를 보내려고 하는데 어이쿠, 병원 전공의한테서 전화가 날라온다.

"교수님, 내일 A병원으로 이송 예정인 골반뼈 종양 환자 목이 좀 부어 있는데요."

"뭐라고 ? 숨은 차지 않고? 이제 와서 출혈될 일은 없을 텐데....어디가 주로 부었노? 앞 목?"

"앞 목은 아니고 옆 목인 것 같은데요..."

"옆목은 괜찮아. 아마 옆목 청소술 부위에 림프액이 고인 것일거야. 그래도 일단 뽑아 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 곧 병원에 갈 테니까 영상의학과에 연락해서 초음파 가이드 피그테일(돼지꼬리 처럼 생긴 배액관)꼽도록 준비해 .."

이 환자만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 온다.

정말 마음씨 좋고 후덕한 동네 수퍼 아줌마 인상인 환자, 8cm가 넘는우측 골반뼈 종양 치료를 위해

A병원으로 내일 이송 예정인데, 옆목에 림프액이 좀 고인 모양이다.

"이걸 해결하고 그 병원으로 보내야지..."

급히 차를 몰고 병원에 도착하니 환자는 이미 지하 1층 영상의학과에 옮겨져 필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기라.

즉시 피그테일(pig tail)을 옆 목 부은 부위에 꽂으니까 맑은 색깔의 림프액이 좌악 나온다. 약 50cc쯤 나오니 부은 목이 납작하게 가라앉는다.

이젠 해결 된 것이다.

그런데도 필자의 마음 한구석은 뭔가 개운치 않다. 만만치 않은 골반뼈 종양과의 전쟁 때문이다.

"5살, 10살 아이들의 엄마인데... 아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 분명히 회복되어서 아이들을 잘 돌 볼 수 있게 되어야할텐데....." 당장 A 병원 Y교수에게 전화를 때린다.

"Y교수, 목 문제는 해결해서 보낼 테니까 나머지 문제는 그쪽에서 확실히 고쳐 줘야 해"

이러고 있는데 오늘 양주 절에 간 처남한테서 다급한 전화가 오는 기라.

"자형, 어머니께서 절 계단에서 내려 오다가 발목이 부러졌데요. 어떡하면 좋아요?"

"그래? 이런... 마침 내가 병원에 와 있으니까 빨리 응급실로 모시고 와~~"

86세나 되는 노인네의 뼈가 부러졌으니.......딸하나 아들 둘 잘 키운다고 고생하신 어머니가 이제 무슨 날벼락이람.

휴일의 응급실은 무지 붐빈다. 크고 작은 문제로 끊임 없이 환자들이 찾아온다. 당직의들은 정말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수많은 환자들 중에 필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어린아이들과 젊은 엄마들이다.

필자의 두째 며늘아이 기쁨조 보다 더 어리게 보이는 한 젊은 엄마가 어린애기 두 명을 데리고 황급히 들어 온다.

젖먹이는 한 팔에 안고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듯한 또 한 애기는 손에 잡고 ........

"애기 아빠는 없나? 아이 한 놈은 아빠가 돌보아야지 ..." 불편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아빠란 남자가 뒤늦게 쭐레쭐레 나타난다.

아직 어리게 보이는 젊은 아빠다. "이런, 쯧쯧, 마누라 힘든 것 도와 줘야지......."( 차 주차하고 수속 때문에 늦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젊은 엄마는 힘들텐데도 힘든 내색 없이 애기들을 잘도 돌보고 있다.

"그렇지,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있지. 그래도 힘든 것은 사실일 텐데...."

필자의 환자중에도 젊은 엄마들이 많다.

30~40대 젊은 환자들은 응급실에서 본 젊은 엄마처럼 아기들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40대 쯤 되면 골반뼈 종양 환자처럼 5살~10살 아이들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이런 아이들을 두고 수술을 받는 젊은 엄마들의 마음은 어떨 것인가?

가끔 수유중인 환자들은 젖을 짜내서 냉장고에 보관하기도 한다.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서다.

어쨌든 애기를 둔 젊은 엄마 환자들을 보면 참 용하게 잘 참아 내고 있구나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짠~~하다.

이때 남편이라도 곁에 있으면 좋으련만 무슨놈의 직장이 웬수라 마누라가 아픈데도 돌봐 줄 수가 없단 말이야.

"마누라 아프면 남편에게도 자동으로 휴가 주는 제도는 안되나...."

수술실 간호사중에서도 출산 휴가를 하고 3개월~ 1년만에 복귀하는 간호사들이 있다. 지난 주에 복귀한 간호사에게 물어 본다.

"출산 휴가 동안 병원에서 뭐 좀 나오는 것 없어?"

"에이 그런 것 없어요"

어떤 나라는 애기 출산 때가 되면 남편도 유급 출산 휴가를 준다고 하는데 ......우리는 왜 이게 안될까.....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출산을 장려할 수 있겠는가.

갑상선암 환자중에는 수술후 보조치료(항암치료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필자는 이말이 싫다) 로 방사성요드치료를 해야 하는 환자들이 있다.

이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문제는 치료후 몸속에 방사능 물질이 일시적으로 남아 주위 가족들에게 방사능 피폭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정기간 동안 가족들로부터 격리를 시킨다.

30mCi이하의 적은 용량은 피해를 거의 입히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 3~4일간 가족들과 1m 정도 거리를 두고 생활하게 하고 그 이상 용량이면 용량에 따라 1~3일간 격리 입원을 시켜 나머지 가족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애기들이 있는 가정이면 퇴원 후 길어도 일 주일 가량 가까운 접촉을 피하게 하기도 한다.

사실 이정도 기간이면 안심해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애기 엄마들은 요양병원에 2주 가량 아니 그 이상 입원해서 애기들을 방사선 피폭으로 부터 보호하려고 한다. 많은 비용을 부담하면서 ......

필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얘기해 주는데도 애기엄마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병원에서 1주라고 얘기해주면 2주이상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모양이라. 애기가 보고 싶어 마음 아파하면서도 말이다.

이제 필자는 더 이상 말리지 않는다.

"그래, 이때가 아니면 언제 남이 해주는 밥 먹고 쉴 수 있겠나...... 언제 이렇게 보호 받고 지낼 수 있겠나......" 하는 마음에서다.

근데 쉬는 건 좋은데 면역 치료다 뭐다 해서 근거 없는 치료로 너무 낭비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애기엄마는 다 보호받아야 한다. 근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다.

각자 알아서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필자로서 기껏 해줄 수 있는 것은 퇴원하는 젊은 엄마의 남편에게 부탁의 말 한마디 하는 것 뿐인거라.

"퇴원하면 공주로 모시고 사셔잉~~공주는 일 안한다이~~"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 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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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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