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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풀려 가는 신안 유물 수수께끼 일본 가던? 원초 원나라 무역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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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안해저유물은 14세기 동양 도자의 보고로서 한국으로 하여금 세계 도자사상 가장 문제국으로 부각시키는 한편 종래의 편년에 많은 문제점을 야기 시켰다. 지난 20일까지 3일간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신안 해저문화재 국제학술대회에는 일·중·영·미·「홍콩」 등지에서 동양 도자에 관한 굴지의 석학 24명이 참가, 발표와 토론을 벌였는데 특히 마지막날의 토의에서 열띤 의견교환이 있었다.

<중국도자기의 편년>
세계학계가 소외했던 시대의 관·민요제품이 막대하게 발견되고 있다는 점에서 참가자들은 모두 감탄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도자기에 있어 최대의 「이슈」는 남송 때의 것이 있느냐는 문제. 「런던」의 「빅토리어·앨버트」박물관 동양부장 「존·예어」씨는 남송 유물이 인양도자기 10%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모두 선박 연대와 마찬가지로 14세기전반 원나라 때 것이 아니겠느냐고 제기했다.
이 같은 제기는 이제까지 송대 도자기로 보았던 상당 유물에 대한 연대추정의 수정을 요하는 것이었다. 동경대 명예교수 「미까미·쓰기오」교수도 한 무역선의 선적유물은 50년 폭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일본 동경박물관의 「야베·오시오까」학예관은 이제까지 남송 것으로 생각했던 비색청자(용천요의 침청자)는 12세기 이전 것이 없으며 14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음이 신안 유물을 통해 밝혀졌다고 시인했다.
국립박물관 정양모 학예관은 시대의 단절보다는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에 걸쳐 남송의 양식이 계승됐으리라고 풀이했다. 따라서 「홍콩」중문대 「J·C·Y·와트」교수는 남송 말에서 1320년대에 이르는 약 반세기 동안이 원대문화가 시작되기 이전의 과도기에 해당되며 그점 회화사상 더욱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고려청자의 절대연대>
선적된 중국 도자가 대체로 14세기 전반께의 유물이라면 12세기 고려청자 3점은 어떻게 해석돼야 할까. 무려 2백년의 격차가 생기는데 그런 골동품이 어떻게 무역품으로 실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예어」씨가 던진 수수께끼.
한국 측 도자 전문가들은 고려청자에 대한 종래의 편년이 별로 수정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정양모 학예관은 희귀한 공예품은 옛것을 구해갈 수도 있으며, 인양된 천목건잔(종래 남송 것으로 추정) 중에는 이미 이가 빠진 것을 실은 것 같은 찻잔이 있으니 만큼 앞으로 사용됐던 흔적의 유무를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와트」교수는 무역품창고의 구석에 남아있던게 몇 점 섞일 수도 있다고 했다.
결국 신안해저유물은 1310∼20년대의 원나라 유물임에 틀림없다는데 의견을 모으면서도 많은 미해결의 수수께끼가 내포돼 있음을 드러냈다.

<선적과 행선지>
침몰선박이 원나라 배일 것이라는 것은 공통된 견해지만 전 「프리어」미술관장 「존·포프」씨는 선상생활의 여러 가지 도구, 특히 금속으로 된 부엌도구를 면밀히 검토해야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배의 행선지문제에는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인양유물에 청화백자가 없다는 점에 대해 동경박물관 「하세베·가꾸찌」연구원은 당시 청화가 없었는지 일본가는 배여서 넣지 않았는지 문제를 제기했다. 윤무병 충남대 박물관장은 일본출토가 전무한 대신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에서 많이 출토되는 철반백자가 인양된 것을 보면 당시 청화백자가 없었다고 해석, 그것이 행선지를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까미」교수는 남 중국에 있어서 무역의 중계지가 「오끼나와」(유구)였음을 상기시키면서 일본출토 원나라 유물은 청자가 많은 반면에 백자 및 청백자가 극소하다고 지적, 일본행 무역선일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 여운을 남겼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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