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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가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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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 나라의 초겨울은 감기로부터 시작된다. 국화가 시들고 서리가 내릴 무렵이면 사람들은 오한을 느끼고, 목소리마저 달라진다. 가을이 물러가며 건네준 선물이다.
이 무렵의 습도는 거의 예외 없이 50%에도 이르지 못한다.
기온도 아침·저녁과 한낮이 사뭇 다르다. 무려 18도C의 터울을 두고 있는 것이다. 늦여름과 초겨울이 몇 시간을 사이로 이웃 해에 있다.
우리 나라의 연간 평균우량은 6백mm 내지 1천5백mm를 기록한다. 이 비는 지역에 따라, 또 계절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손바닥만한 나라에서도 천기의 조화는 고르지 못하다.
우선 연간 강수량의 절반 이상이 한 여름에 쏟아진다. 해안지방은 50%, 내륙지방은 60%. 이 비는 여름철 석 달 동안에 집중되어 있다.
지역적으로도 특성이 있다. 남에서 북으로 갈수록 비는 적다. 남해안지방의 연간강수량이 1천5백mm인 것에 비해 백두산의 남동부는 그 3분의1에 그친다.
비를 몰고 오는 저기압은 대체로 중국대륙산이다.
그것도 양자강유역에서 발생한 저기압이 우리 나라의 강우량을 지배한다.
양자강의 저기압이 걸치는 지역은 산맥이 가로지른 고장이다. 반도에 종횡으로 뻗은 소백산맥·태백산맥·묘향산맥 등은 바로 동서남북으로 뻗어 저기압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든 걸치게 되어있다. 이 지역은 비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10월에 접어들면 계절풍의 방향이 바뀐다. 해양성고기압이 쇠약해지면서 남동계절풍도 뒷걸음을 친다. 그 대신에 중국대륙으로부터 고기압이 밀려온다. 우리 나라의 가을하늘이 맑은 것도 그 때문이다. 비는 동해안과 남해안을 제외하면 겨우 30mm 내지 60mm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날씨는 벼농사엔 더없이 좋다. 낱알을 단단히 여물게 하고, 또 손실도 적다. 행락을 위해서도 맑은 날씨는 여간 고맙지 않다. 우리 나라의 가을은 그야말로 황금의 계절이다.
「유럽」의 경우만 해도 이 무렵은 음산하고 춥다. 사람들은 햇볕에 굶주려 공원마다 한낮이면 일광욕을 즐기는 군중들로 메워진다. 한 뼘의 햇볕도 아쉬워한다. 대부분의 날씨가 흐리고 축축하고, 으스스한 것이다.
올 가을의 우리 나라 날씨는 그러나 가뭄이 좀 지나친 것 같다. 40여 일을 두고 비를 볼 수 없고, 기온마저 변덕스럽다. 메마르고 칼칼한 날씨는 감기에 걸리기엔 십상이다. 신선한 과실 섭취와 흡족한 휴식에 마음을 써야할 것 같다. 올 가을의 과실풍년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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