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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정원과 산업사회의 요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날로 심각해 가고 있는 중화학공업 분야의 고급 인력 수요 부족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는 내년도부터 기계 및 전자공학과 학생 정원을 일률적으로 배증 키로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이 문교부가 아닌, 국산화 추위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명백한 바와 같이, 이 분야의 인력 수급 차질은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절박성을 가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 전국의 유수 기업들은 연일 새 일꾼을 모집한다는 대문짝 만한 광고를 신문지상에 실리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각종 유인을 제공하면서 재학 시절부터 유능한 새 일꾼을 확보하기 위한 「스카우트」작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이 같은 인재난은 비단 특정 과학 기술 분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내 유수 기업들의 급격한 성장과 그 대형화, 국제화 추세에 따라 지금 유능한 사원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는 부문은 기술 계통 이외에도 기획, 관리, 무역 실무, 어학, 전산 등 기업 경영의 전 분야에 걸치고 있어 그러한 인력의 공급원은 아무래도 기존의 유수한 대학들이거나, 아니면 사내에 특별히 마련된 효과적인 사내 훈련 「프로그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정부가 이번 기계 및 전자공학과에 국한하여 그 정원을 일률적으로 배증 하기로 한 결정은 여러모로 미봉적인 소치임을 면치 못 할 것이다. 그 같은 기계적인 정원 증가 조치란 우선 해당 분야의 쓸모 있는 일꾼을 단시일 안에 확보하겠다는 본래의 목적을 충족시키기 어렵게 할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 산업사회나 대학의 실정을 등한시한 즉흥적인 구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첫째, 산업사회의 요청이란 측면에서 보면 인적·물적 시설이 극히 빈약한 학교에서 배출하게 될 졸업생이라면 설사 그 수효가 몇 천명이 되더라도 별로 반가와 할 리가 없으며, 그럴진대 기계적인 정원 증가 조치는 재정과 시간의 낭비밖에는 안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산업계가 요구하고 있는 고급 인력 수효가 전기한 바와 같이 비단 특정 과학 기술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상기할 때, 대학의 정원 문제를 국산화 촉진의 애로 타개라는 좁은 시야에서만 보고, 유독 기계·전자 공학 부문만 바로 떼어 논의한다는 것은 종합적·장기적이어야 할 대학 정책으로서 취할 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나라도 대학 정원 정책 자체를 다루는 자세에 있어 근본적인 전환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고등교육의 대중화 시대」에 살면서 적령 인구에 대한 대학생 비율을 억지로 8%로 억제하여 종래 엄격한 「엘리트」위주 대학 교육을 실시해 오던 영국(19%)이나 「프랑스」(24%)보다도 더 보수적인 대학 정원 정책을 고집하고 있는 태도는 실로 불가해한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대학에의 진학 희망자 대 모집 정원의 비율은 71년의 33.4%에서 77년엔 1.9%, 78년엔 22.6%(예상)로 해마다 감소 일로에 있고, 매년 25만명 가까운 「재수생」이 귀중한 시간.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이 같은 상황 아래 국내 기업의 인재난 완화를 위해 보다 융통성 있는 정원. 학과의 확장이 필요하다 함은 더 말할 것 도 없거니와, 전반적으로 고등 실업자의 양산 우려나 수도권 인구 억제 정책을 이유로 한 극히 고식적이며 폐쇄적인 대학 정원 정책은 근본적으로 혁파해야 할 때가 왔다고 믿는다.
대학의 인적·물적 시설을 기준으로 한 엄밀히 선별적이면서 대담한 개방 정책과 함께 제도화한 사내 훈련이 「프로그램」의 강화로써 급속히 발전하는 우리나라 산업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고, 이 나라 문화의 창달에 능동적으로 참여 할 수 있는 고등 교육 기관의 질적 향상에 단안을 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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