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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개학·독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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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 강산 가을 길에 물 마시고 가보시라/수정에 서린 이슬을 마시는 산뜻한 상쾌이라/이 강산 가을 하늘아래/전원은 풍양과 결실로 익고/빨래는 기어이 백설처럼 바래지고/고추는 태양을 날마다 닮아간다.- 애국시인 한하운이 노래했던 이 청아한 가을이 삼천리 방방곡곡, 우리 모두의 머리 위와 마음속에 다가오고 있다.
8월의 노염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23일은 벌써 처서. 귀뚜라미의 우짖음 속에서도, 다시 문을 연 각급 학교의 교정에서도, 그리고 점두에 진열된 신간서적의 장정에서도 가을은 이미 문턱에 와 있다.
벌써부터 아침저녁 바람이 한결 서늘해지고, 밤이면 들판에서 들려오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도 애조를 더해가고 있다.
이제 다가서는 가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모두가 한여름동안 헝클어진 마음을 가다듬고 주변을 정돈하여 새로운 몸가짐으로 정진해야 할 때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농민들이 봄에 씨뿌린 곡식을 거둬들이기 위해 마지막 땀을 흘리듯이, 누구나 내면의 풍요와 윤택한 삶을 위해 생활의 질서를 다시 찾고 모든 분야에서「알찬 결실」을 다짐하는 가을이 돼야겠다.
때맞추어 각급 학교의 2학기도 시작됐다. 조용하던 교정은 검게 그을은 학생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들어차자 활기를 되찾게 됐고, 서로 얼굴을 마주대고 방학동안 쌓였던 이야기들로 화제의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러나 방학이란 언제나 생활의 규율과 마음의 긴장을 흐트려 놓게 마련이다.
방학의 기쁨은 무엇보다 해방의 기쁨이었고, 해방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산과 바다를 찾아 분방하게 뛰어 논 것이 방학생활이었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모든 일에는 끊고 맺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학동안의 타성을 언제까지나 끌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방학동안 단련한 체력과 휴식으로 얻은 활력을 공부에 집중하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정상적인 생활의 「리듬」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
가을은 또 사색의 계절이며 독서의 「시즌」이다.
기나 긴 가을밤의 고요한 벌레소리, 그리고 조락하는 나뭇잎의 형해들은 한없는 사유의 세계를 펼쳐준다.
우리는 사유와 독서를 통해 인생의 깊이와 생활의 예지를 얻는다.
말할 것도 없이 책을 읽음으로써 부단히 새 지식을 얻고 교양을 갖추게 되며 동서고금의 명현들이 가진 슬기와 신념을 배울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한 국민의 독서수준은 그 국민전체의 문화수준을 말해주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독서현황을 살펴볼 때, 그 저조한 실태를 새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유네스코」의 한 통계는 우리 나라 독서인구는 전체국민의 10%정도인 것으로 밝히고 있다. 영국과 서독의 55%, 「프랑스」의 28%, 일본의 44%와 비교할 때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학생시절에 되도록 많은 고전을 탐독하면서 교양과 꿈을 키운다는 것은 일생을 좌우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바로 인식해야 할 줄 안다. 더욱이 현대는 지식의 수요가 날로 늘어가는 지식산업사회다. 독서를 외면하는 풍조는 곧 개인과 국가를 다같이 낙후시키는 병리임을 알아야 하겠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는 여울목에서 감상적으로 자연의 변화를 지켜보는 데만 그치지 말고, 알차고 값진 수확을 향해 창조적인 생활을 설계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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