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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의 참뜻을 내일에 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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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쉴새없이 전진하는 것이 역사의 움직임이다. 정체하거나 전진의 대열에 끼지 못하는 개체는 용서 없이 물거품이 되어 소멸하고 마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적자생존의 도태현상으로 냉엄한 진화의 법칙이 적용되듯이 인류사회에선 오직 스스로 질적 발전에의 의지와 역량을 가진 민족만이 역사의 진운에 동참하고 그 찬란한 문화의 결실을 향유할 수 있다.
8·15해방 32주와 정부수립 29주의 기념일을 맞는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엄숙한 역사발전의 철리를 반추해 보게 된다. 1945년에서 1977년에 이르는 특정기간만을 따로 떼어, 우리민족과 우리국가가 이 같은 역사발전 과정에서 과연 얼마나 성장과 발전을 이룩했었던가를 되새겨 보면 아마도 저마다 새로운 감회를 금치 못할 것이다.
같은 기간 중에 세계사의 무대에 등장한 수많은 민족, 국가들과 대비해 볼 때, 우리는 우선 전체적으로는 이제 세계의 어디를 가나 의젓하게 「코리언」의 「아이덴티」를 주장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한 상을 확립하도록 성장한 것을 대견하게 여길 수도 있다.
지난 백년의 역사가 오직 모진 시련과 수난으로만 일관했던 우리의 과거를 회고할 때, 광복32년의 역사는 확실히 우리가 민족으로서의 역량을 축적하고, 용감히 역사발전의 대열에 뛰어든 시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 사이 36년간이란 오랜 기간, 세계에서도 유례없이 가혹했던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시달려야만 했으며, 뒤이은 남북분단 하에서의 동족상잔과 전 국토 초토화의 비극을 경험해야 했고 두 차례의 혁명 등 거듭된 혼란을 겪어야만 했었다.

<국가발전과 국민적 자긍>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발전 지향적인 한국인의 의지가 외지로 하여금 『저기 한국인들이 몰려온다』는 경구를 실토케 하게끔 뚜렷한 「아이덴티」를 확립시켰다면 이를 어찌 대견스러운 일로 자긍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실상 발전이라는 말이 물리적·외형적인 성장과 같은 뜻이라면 해방이후 32년간의 한국, 그 중에도 특히 최근 10여 년간의 한국은 확실히 경이적인 발전의 지표를 세계에 시범한 소수의 나라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해방당시에 비해 무려 수십 배로부터 수천 배까지 뛰어오른 국민총생산·1인당국민소득·산업생산지수·수출입고·담세율 등 경제적인 제지표를 들출 것도 없이, 지금 한국의 도처에 임립하고 있는 고층「빌딩」과 각종 산업공장의 숲, 전국으로 뻗은 고속도로망, 세계 구석구석에까지 진출하고 있는 「메이드·인·코리아」의 상품들, 그리고 이미 1천만명 선을 넘어선 교육인구와 최신 현대장비로 무장한 60만대군의 위용 등 그 어느 하나를 보더라도 실로 금석지감이 없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은 장구한 문화적 전통을 가진 한국민의 천부의 소질과 폭넓게 보급된 교육받은 인구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여기에 시운을 타고 개방사회체제 특유의 합리주의·능률주의가 급격한 성장의 추진력 구실을 다해 온 덕분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써 국가발전의 방향을 정립하고 지도하는데 있어 탁월한「리더십」을 발휘한 정부가 있으며, 모든 국난 앞에 감연히 도전한 유능한 기업가와 성실한 근로자, 그리고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묵묵히 국가발전의 대열에 동참한 국민대중의 눈물겨운 노력이 깔려 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성장과 질적 발전>
그러나 이 모든 찬란한 외형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 때문에 도리어 등한시되어 온 한 국가사회의 질적 발전의 문제가 지금 더 한층 심각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음을 또한 외면해서는 안되겠다. 능률화·합리화의 이름아래 모든 것을 획일화하고 규격화하려는 사고방식이 만연하고 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몰가치의 성행, 분수를 헤아리지 않는 향락풍조, 소득배분의 불균형이 빚어낸 사회적 위화감의 확대 등등, 요컨대 성장의 진전에 따르는 급격한 사회적 불균형이 현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오늘 우리가 경축하려는 해방과 광복의 참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8·15는 비단 일제의 야만적 식민통치로부터 우리 민족이 풀려났다는 일과적인 의미에서의 해방기념일만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전제적 식민주의의 종언을 고하는 역사적 만종이 울려 퍼진 기념일로서 차후로도 모든 민족은 스스로를 지킬 주체적 역량을 배양함으로써 어떠한 외세나 전제자의 질곡도 의연히 박차고 나가야 한다는 세계사적 교훈을 던져준 기념일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보라 포악한 군국주의로 우리를 짓밟고 신격화까지 했던 천황전제 밑에 신음하던 일본이 패전 후 도리어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큰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이 엄연한 진리는 우리의 해방과 전후해서 탄생한 「유엔」헌장정신에도 명시된 것으로서 그날의 해방은 어떤 특정국가나 특정 대상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민주주의적인 세계사의 진운이 우리 모두의 현실적인 생활질서 속에 확립돼야 할 역사적 필연성을 계시한 것으로 파악해야 할 소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와 인재, 그리고 국부의 축적을 통해 흔들림이 없는 민주적인 생활질서를 이 땅에 확고히 세우는 것만이 그날 해방된 우리 민족의 당위가 아니겠는가.

<창조적 혁신의 앞날>
8·15는 또한 광복절로서 경축되고 있다. 소박하게는 독립국가로서의 영광을 되찾은 날이라는 뜻이겠지만 역사적 진운에 앞장서려는 한국 민족으로서는 이 말을 단순히 과거적인 영광에의 집착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에 대한 우리민족의 강력한 의지와 우리의 사회이념이자 국민적 가치체계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적인 조국의 상을 세계 속에 빛내자는 보다 큰 뜻이 담겨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오늘날 자주 강조되는 창조적인 문화활동·자립경제·자주국방 등 모든 부문에 걸친 통합된 민족역량의 착실한 축적이 그 전제가 되어, 세계만방에 대해 개방된 민주사회로서의 한국상을 과시할 수 있는 제분행이 국내외적으로 확립되어야만 할 것이다.
조국광복과 해방을 마지한지 32년. 한국은 지금 분명히 역사의 진운의 선두에 서 있다. 이제 그 광복과 해방의 참뜻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 국가가 날로 새로운 내일의 영광을 세계에 펴 나가겠다는 슬기를 가져야 한다.
32년 전의 그것이, 비뚤어진 국가「에고이즘」의 희생이 된 약소민족과 피지배국가들에 물리적인 구속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연 법적 제 권리의 회복을 가져다 준 것이라면, 이제 날마다 이루어야 할 제2의 해방과 제2의 광복은 국민전체의 창조적 역량의 부단한 축적을 통해 질적으로 보다 세련되고 보다 안정된 국민생활의 기조를 확립하고 균형 있고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꾀함으로써 의연한 국민적 위신을 세우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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