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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일본의 행정개혁에서 배우는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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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종욱
일본 가가와대 교수

세월호 참사 수습 방안과 관련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를 개조한다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하였다. 그 첫 단추로 관료사회 개혁을 언급하며 개혁방안 마련을 안전행정부에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관료사회가 보여준 총체적 난맥상을 ‘공무원 셀프 개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관료조직의 관행과 문화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고도의 정치적 산물로, 한번 제도화되면 아무리 불합리하더라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로의존성을 갖는다. 따라서 개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관료조직과 격리된 독립적인 추진기구, 그리고 관료들의 자기방어적 저항과 간섭을 차단할 강력한 정치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강력한 관료 우위의 전통을 가진 일본도 그런 진통을 뚫고 행정개혁을 추진해 왔다.

 전후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일본의 엘리트 관료는 1980년대까지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지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80년대 중·후반 공무원들의 각종 부정·비리가 알려지면서 개혁의 표적이 됐다. 일본의 행정개혁은 62년 제1차 임시행정조사회를 시작으로 수차례 단행됐다. 공무원제도의 개혁과 중앙행정기관의 통폐합 등을 통해 고질적 병폐인 부처이기주의와 아마쿠다리(낙하산 인사)를 수술해, 행정 효율화와 내각의 정치적 리더십 강화를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 없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실패의 배경에는 관료의 교묘한 방해공작과 강고한 저항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의 가시적 성과를 남긴 사례라면 80년대 나카소네 내각의 3공사(국철·전매공사·전신전화공사) 민영화와 90년대 하시모토 내각의 중앙성청 재편과 지방분권개혁, 그리고 2000년대 고이즈미 내각의 우정사업 민영화와 지방재정개혁(삼위일체개혁)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행정개혁들이 나름의 성과를 거둔 배경에는 다음의 두 가지가 존재한다.

 우선, 개혁방향과 수단·개혁 공정표가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총리 직속의 독립적 자문기구를 통해 검토되고 추진되었다는 점이다. 나카소네 내각이 추진한 3공사 민영화의 경우, 총리부(현 내각부)에 설치된 ‘제2차 임시행정조사회’가 중심 역할을 맡았다. 당시 조사회의 회장은 도시바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도고 도시오(土光敏夫)였다. 검소한 생활과 뛰어난 경영능력으로 존경받던 그는 정치권과 관료들의 간섭을 막기 위해 조사회의 최종안을 총리가 반드시 책임 있게 실행한다는 조건으로 조사회 회장직을 수락했다. 하시모토 내각의 중앙성청 재편과 지방분권개혁에서도 총리부 산하의 민간 검토위원회인 ‘행정개혁회의’가 주도했다. 우정사업 민영화와 지방재정개혁에선 ‘경제재정자문회의’의 존재가 빛을 발했다.

 특히 ‘경제재정자문회의’는 고이즈미 총리가 추진했던 일련의 구조개혁과정에서 브레인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도요타자동차 회장을 역임한 오쿠다 히로시(<5965>田碩)와 경제학자 혼마 마사아키(本間正明)를 비롯한 민간위원의 역할이 매우 컸다. 자문기구에 참여한 민간위원들도 기업인과 학계 전문가에 국한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장, 평론가, 언론인, 노동조합 관계자 등이 포함돼 다양성과 포괄성이 확보되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들 자문기구는 수시로 관계 공무원과 협의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독립적인 자체 논의체계를 갖고 최종 보고를 통해서 행정개혁의 엔진 역할을 담당했다.

 다음으로 자문기구의 독립적 활동에 대한 국정 최고책임자인 내각총리의 확고한 정치적 지지와 지원이 있었다는 점이다. 대담한 행정개혁일수록 자문기구의 내부검토 과정에 대한 관계 부처와 이익단체의 압력과 로비는 매우 정교하며 파상적이다. 이러한 외부세력의 방해로부터 자문기구의 결정적 방패막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최고결정권자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고이즈미 내각의 ‘경제재정자문회의’는 정부 예산편성과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종래 일본의 예산편성과정은 재무성과 각 중앙부처, 재무성과 여당(자민당) 간부 간의 절충으로 이루어져 정관유착과 이익정치의 온상이었다. 관료사회에서 예산편성은 각 부처 조직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경제재정자문회의’는 이를 ‘호네부토(骨太) 방침’을 통해 총리 관저 중심으로 예산편성의 방향을 확 바꾸었다.

 일본의 행정개혁은 독립적 자문기구와 국정 최고책임자의 확고한 정치적 지원이 관료사회에 변화의 모멘텀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위의 두 가지는 관료개혁에서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관료사회의 병폐는 잡초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일본에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관료시스템의 한계가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다시 한번 거센 관료개혁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도 양날의 검인 관료를 잘 활용하기 위해 정치권과 국민의 지속적인 감시와 견제, 그리고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할 제도적 장치를 부단히 개발할 필요가 있다.

김종욱 일본 가가와대 교수